국내 유업계가 프리미엄 우유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흰 우유 소비가 줄어드는 가운데 미국·유럽산 멸균유가 무관세를 앞세워 빠르게 시장을 파고들면서다. 가격 경쟁력에서 밀린 국내 유업체들이 저지 우유, 유기농 우유, 락토프리 제품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우유 소비량 '뚝' … 수입 멸균유 수입 '껑충'23일 유업계에 따르면 국내 1인당 흰 우유 소비량은 2022년 26.2㎏에서 2023년 25.9㎏, 2024년 25.3㎏, 지난해 22.9㎏으로 감소세를 이어갔다. 저출산과 대체음료 확산,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흰 우유 수요가 구조적으로 줄어든 영향이다.
반면 수입 멸균유는 빠르게 늘고 있다. 멸균유 수입량은 2021년 2만3119t에서 2022년 3만1385t, 2023년 3만7361t, 2024년 4만8671t, 지난해 5만740t으로 증가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산 멸균유 관세는 올해 1월부터 철폐됐고, 유럽연합(EU)산 멸균유도 오는 7월 무관세 전환을 앞두고 있다.
멸균유의 강점은 보관성과 가격이다. 미개봉 상태에서는 상온에서 수개월 보관할 수 있어 대량 구매와 온라인 배송에 유리하다. 국산 냉장 우유보다 가격이 낮은 수입 멸균유가 늘면서 우유를 자주 마시지 않는 1인 가구와 라떼·시리얼용 수요를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국산 우유는 원가 부담도 크다. 한국유가공협회에 따르면 원유 기본가격은 L당 1084원이다. 인센티브와 집유비 등을 포함한 유업체의 실제 지불가격은 L당 1276원으로 추산된다. 뉴질랜드, 미국 등 주요 낙농국과 비교해 원유 가격이 높은 구조다. 소비는 줄고 원가는 높은데, 저가 수입 멸균유까지 늘면서 일반 흰 우유 시장의 수익성이 악화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원유 수급 불균형도 커지고 있다. 올해 1~3월 기준 일평균 원유 생산량은 5417t, 사용량은 4881t으로 잉여량은 하루 536t에 달했다. 2022년 같은 기간 하루 369t이던 잉여량이 2년 만에 45% 늘어난 것이다. 남는 원유는 분유나 치즈 등 보관이 가능한 제품으로 가공해야 해 추가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가격 경쟁 대신 ‘품질 차별화’유업체들은 가격 경쟁 대신 ‘품질 차별화’에 집중하고 있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영국 저지섬 원산의 저지 품종을 활용한 프리미엄 원유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저지 품종 원유는 일반 우유보다 단백질과 칼슘 함량이 높고 유지방 함량도 높아 진하고 부드러운 풍미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우유는 국내 전용 목장에서 100% 국산 저지 우유를 생산·집유하고 있다. 지난 5월부터는 프랜차이즈 카페와 베이커리 등을 대상으로 기업 간 거래(B2B) 전용 제품인 저지밀크 소프트믹스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프리미엄 디저트 시장을 겨냥한 행보다.
매일유업은 전북 고창 상하목장을 앞세워 유기농 우유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넓은 사육 환경과 유기농 인증 원유를 강조하며 발효유, 유기농 주스, 아이스크림 등으로 제품군을 넓히고 있다. 단순 흰 우유 판매에서 벗어나 상하목장 브랜드를 프리미엄 유가공 플랫폼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남양유업도 외식 브랜드 백미당을 통해 유기농 우유를 활용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유기농 인증 원유를 사용해 고소하고 진한 맛을 강조하는 한편, 유당불내증 소비자를 겨냥한 락토프리 제품도 확대하고 있다. 흰 우유 소비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능성·고급화 제품으로 수요를 세분화하는 방식이다.
유업계 관계자는 “일반 흰 우유 시장은 소비 감소와 수입 멸균유 증가로 구조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며 “국내 유업체들은 고품질 원유와 프리미엄 제품을 통해 수익성을 방어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행은 빠르게 번지지만 그 이면은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트렌드워치’는 뜨는 소비 트렌드 뒤에 숨은 업계의 전략과 시장의 변화를 추적합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