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연준의장' '금융위기 초래' 상반되는 평가 받았던 앨런 그린스펀 별세

입력 2026-06-22 21:37
수정 2026-06-22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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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은퇴 당시 최고의 연방준비제도 의장으로 칭송받았지만, 2년 만에 닥친 심각한 금융 위기로 비난받았던 앨런 그린스펀이 22일(현지시간) 10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NBC 뉴스가 보도했다.

1987년 8월부터 2006년 1월까지 연준 의장으로 재임한 그린스펀은 파킨슨병 합병증으로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NBC가 그의 아내이자 NBC 워싱턴 특파원인 안드레아 미첼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날 로이터에 따르면, 그린스펀은 1991년 3월부터 2001년 3월까지 10년간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긴 경제 확장기를 이끌었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생산성 급증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것이라는 선견지명을 가진 판단으로 “경제계의 마에스트로"라는 명성이 생겼다.

제롬 파월 전 연준 의장은 이를 경제에 대한 기술적 모델보다 판단력이 더 중요할 수 있는 사례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통화 정책에 대한 통찰력은 이후 의문시되기 시작했다. 그의 정책이 일련의 자산 가격 거품을 부추기고 2007년에서 2009년 사이 금융 위기의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비판됐기 때문이다.

야구 통계에 대한 집착을 통해 수학에 매료된 그린스펀은 취임 두 달 만인 1987년 블랙 먼데이 주식 시장 폭락에 대한 강력한 대응으로 찬사를 받았다. 또한 1990년과 19991년의 경기 침체, 1997년부터 1998년의 아시아 및 러시아 금융 위기,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그리고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 이후의 격동적인 경제 여파 속에서도 미국 경제를 이끌었다.

전기 작가 세바스찬 말라비의 설명에 따르면, 그는 그 과정에서 대통령과 각료들을 조종해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의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데 능숙한 워싱턴 정계의 거물로 성장했다.
2005년 연준의 잭슨홀 회의에서 두 명의 저명한 경제학자는 그를 아마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중앙은행 총재라고 칭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임기 마지막 4년 동안 주택 가격 거품이 마침내 터지면서, 한때 빛나던 그의 명성은 물론 세계 경제까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린스펀의 당시 업적이 어떠했든 간에, 그의 후임자들은 연준을 새로운 방향으로 꾸준히 이끌었다. 그린스펀이 직면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제로 금리와 같은 금융 위기 대응 수단을 도입했고, 불투명한 소통 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잦은 연설, 명확한 인플레이션 목표 설정, 정기적인 기자 회견 등을 도입했다.

통화 정책에 대한 비판 외에도, 금융 시장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를 강력하게 옹호했던 그린스펀은 은행들이 주택 시장에 대한 파국적인 투기를 하도록 방치한 방임적 태도로 인해 비난을 받았다.

전 연준 고위관리였던 스티븐 올리너는 "금융 위기 직전에 그에게 쏟아진 칭송은 결코 마땅한 것이 아니었고, 퇴임후 받았던 맹렬한 비난 역시 완전히 정당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정아 객원기자 k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