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은행권의 사회공헌활동과 광고 집행 현황 점검에 나섰다. 은행권의 지난해 사회공헌액이 역대 최대인 2조원을 넘어선 가운데 포용금융을 강조해온 정부의 기조에 맞춰 금융당국이 검증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자본 건정성이나 시장 안정 등 금융 본연 업무와 연관성이 떨어지는 사회공헌과 광고까지 조사 대상이 되는 게 맞느냐는 지적도 적지 않다. 금융권에서는 금융지주 회장의 연임 등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안’ 마련이 지연되고 있는 것과 연관시키는 시각도 있다. 지배구조 개선안에 소극적인 금융지주를 압박하려는 금융당국의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도 최근 하나금융지주와 하나은행, 메리츠증권을 대상으로 세무조사를 진행했다.
2조원 쓰는데 억울한 은행권
금감원 은행검사1국은 지난 6월 9일부터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에서 ‘사회공헌활동 및 광고 집행 현황’을 조사했다. 은행들이 공익 광고나 행사를 사회공헌 비용으로 처리했지만 실제로는 상업적 성격이 짙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금융지주가 사실상 이미지 광고를 하면서 사회공헌활동으로 분류해 세금 혜택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우리금융에 이어 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 등 4대 금융지주에 대한 조사도 차례로 진행했다. 특히 이번 조사는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안 관련 업무를 주도해온 금감원 은행검사1국이 맡고 있다. 사실상 금융지주 회장을 겨냥한 조사라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사회공헌활동과 광고 집행 과정에서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살펴보려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조사를 금융권을 향한 이재명 대통령의 공공성 강화 기조와 연관짓기도 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월 국무회의에서 “금융기관의 공공성이 너무 취약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라이선스(인가) 산업인 은행업은 다른 어떤 산업보다 적극적인 사회공헌활동을 펼쳐왔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작년 은행권의 사회공헌활동 금액은 2조1560억원으로 집계됐다. 2024년(1조8934억원)보다 13.9% 증가한 수치다. 2006년 첫 집계 당시 3514억원이었던 은행권의 사회공헌 규모는 2019년 1조원을 돌파한데 이어 작년엔 2조원을 넘어섰다. 분야별로는 지역사회·공익 부문이 1조4350억원(66.6%), 서민금융 부문이 5389억원(25.0%) 순이다. 지역사회·공익 부문 중 대부분은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지역신용보증재단 특별 출연금이다. 서민금융도 정부가 추진하는 공익 사업 출연금이 가장 많다. 공익 광고나 상업적 성격 행사와 관련된 비용 자체가 크지 않다는 뜻이다. KB,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5대 금융지주가 올해 13조원 이상을 투입하기로 한 포용금융 역시 내년 공시될 5대 은행 사회공헌활동 현황에 포함될 전망이다. 포용금융에는 서민과 소상공인 대출 확대는 물론 기존 연체 채권 소각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세부 항목을 뒤져 상업성 여부를 따져보겠다고 나섰다. 금융당국이 조사 과정에서 금융지주와 은행에 사회공헌활동과 관련된 광고뿐만 아니라 언론사별로 집행된 광고비 자료까지 제출을 요구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과거 국회 국정감사 때 몇 차례 요구가 나온 적은 있지만 여러 부작용을 감안해 실제 제출되지는 않은 자료들이다. 사실이라면 민간 금융사의 경영 자율성 침해 논란은 물론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행위로 볼 여지도 있다. 공정한 금융 질서 확립과 금융 소비자 보호 등 금감원의 설립 목적과도 맞지 않음은 물론이다.
은행 스스로 사회공헌 되돌아봐야
은행권이 스스로 사회공헌활동에 대한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회공헌 범위를 명확히 나누기 어렵다는 이유로 관련 행사나 캠페인 비용 등을 사회공헌활동에 반영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 금융지주는 회장 연임을 앞두고 사회공헌 비용을 늘려 우호적인 여론 형성에 활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이번 금감원 조사의 첫 타자가 된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이 대표적이다. 2023년 3월 취임한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임기 3년을 마치고 올해 3월 연임에 성공했다.
은행연합회가 공시한 은행 경영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우리은행의 사회공헌액은 3090억원으로 5대 은행 중 KB국민(3589억원), 신한(3326억원), 하나(3218억원)에 이은 4위다. 문제는 증가율이다. 우리은행은 2024년(2325억원)에 비해 32.9%나 사회공헌 비용을 늘렸다. KB국민(+19.9%), 신한(+10.2%), 하나(+9.3%)와 비교해 증가폭이 가장 크다. 우리은행의 실적을 감안하면 사회공헌액 증가가 더 두드러진다. 우리은행의 작년 당기순이익은 2조6066억원으로 전년보다 14.2% 감소했다. KB국민(순이익 3조8620억원·증가율 18.8%), 신한(3조7748억원·2.2%), 하나(3조7475억원·11.7%) 등 나머지 은행은 모두 전년보다 실적이 개선됐다. 우리은행 순이익에서 사회공헌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10%(11.9%)를 웃돈다. 한 시중은행 재무담당 임원은 “우리은행이 자산 성장보다는 자본 비율 방어에 치중하는 수비적인 경영을 펼치면서도 사회공헌액을 늘린 점은 이례적”이라고 했다.
우리은행은 작년 사회공헌액 증가와 관련해 재단 출연 등 일회성 측면이 크다고 해명했다. 2024년 1174억원에서 작년 1600억원으로 400억원 넘게 늘어난 소상공인 지원은 신보·기보·지역신보 등에 출연금이 늘어난 결과라는 설명이다. 특히 같은 기간 26억원에서 185억원으로 7배 넘게 증가한 글로벌 지원도 다문화 학생 지원을 위해 설립한 ‘우리다문화장학재단’에 작년 1월(97억원), 12월(84억원) 두 차례 출연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일회성 지원보다 기본재산 출연을 통해 안정적으로 장학재단을 운영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했다.
4대 은행 가운데 유독 차이가 큰 사회공헌활동도 눈에 띈다. 문화, 예술, 체육 지원을 포함한 메세나 활동은 KB국민(46억원), 신한(66억원), 우리(48억원)가 엇비슷한 반면 하나은행은 201억을 투입했다. 하나은행은 아마추어 스포츠 대회와 팀(선수) 지원에만 161억원을 썼다. KB국민(21억원), 신한(23억원), 우리(3억원)에 비해 유독 많다. 하나금융은 재단법인을 통해 ‘대전하나시티즌’을 운영하는 등 스포츠 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유소년 축구 유망주는 물론 육상 등 비인기종목 후원을 늘리고 있다”며 “한국 패럴림픽팀 후원사로 참여하는 등 장애인 체육 지원도 확대 중”이라고 설명했다.
4대 은행이 운영 중인 프로농구단 지원액을 사회공헌 추가 활동으로 소개한 점도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 로고를 붙인 유니폼을 입고 뛰면서 많게는 5억원 가까운 연봉을 받는 프로스포츠를 사회공헌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KB국민(64억원), 신한(49억원), 하나(66억원), 우리(68억원) 등 4대 은행이 작년 여자농구팀에 후원한 금액은 250억원에 가깝다. 금융당국의 은행권의 사회공헌활동과 광고 집행 조사는 득보다 실이 많은 게 분명하지만 은행권도 ‘누구를 위한 사회공헌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