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이 알아서 하래요"…신혼부부 몰린 동네 '곡소리' 터졌다 [돈앤톡]

입력 2026-06-23 06:30
수정 2026-06-23 07:20
"전세요? 지금은 물건이 없어요. 매물이 나오면 바로 나갑니다."

최근 서울 중랑구 신내동의 한 공인중개업소를 찾은 한 30대 실수요자는 30평대 전셋집을 찾고 있다는 이 같은 대답을 들었습니다. 중개사는 “소개할 수 있는 물건이 3~4개 정도밖에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이 일대에선 전세 물건이 시장에 나오더라도 곧바로 계약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 임대차 시장에서 세입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전세와 월세를 포함한 임대차 매물이 급감하면서 집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나오는 집은 잡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서입니다.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 무주택 실수요자가 주로 찾는 서울 외곽 지역에서 매물 감소 현상이 두드러진 결과입니다.

23일 부동산 정보제공 앱(응용프로그램)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전날 기준 서울 25개 자치구 중 1년 전보다 임대차 매물 감소율이 가장 높은 곳은 75.7%를 기록한 중랑구였습니다.

중랑구에서 1년 전 747건이던 전·월세 물건은 최근 182건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성북구 역시 1201건에서 396건으로 줄어 67.1% 감소했습니다. 구로구는 744건에서 270건으로 63.8%, 노원구는 1624건에서 616건으로 62.1%, 관악구는 852건에서 336건으로 60.6% 줄었습니다. 동대문구(-58.5%), 도봉구(-58.2%), 금천구(-57.2%), 강북구(-55.4%)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서울 동북권과 서남권을 중심으로 임대차 물건이 절반 이상 사라진 셈입니다.

이들 지역은 상대적으로 집값 부담이 덜해 사회초년생과 신혼부부, 청년층 수요가 집중되는 지역입니다. 관악구 신림·봉천동, 구로·금천구, 노원·도봉·강북구 등은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셋집을 찾을 수 있는 곳으로 꼽힙니다. 실수요자가 많은 지역일수록 매물 감소 폭도 크다는 의미입니다.

현장에서는 이미 집주인 우위 시장이 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성북구 길음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관계자는 "전셋집이 워낙 없다 보니 물건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계약하는 상황"이라고 귀띔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시장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세입자의 토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배를 요청했더니 집주인이 알아서 하라고 했다", "에어컨 수리를 거절당했다", "계약 연장을 원하면 월세를 올려달라고 했다" 등의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가장 큰 이유로 공급 부족을 꼽습니다.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올해 서울에서 입주하는 아파트는 모두 1만8550가구입니다. 서울 연간 적정 수요가 4만 가구를 웃도는 점을 고려하면 수요를 해소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물량입니다.

임대차 시장 구조도 바뀌고 있습니다. 집주인들은 과거와 같이 목돈을 받아 운용하기보다 매달 안정적으로 현금이 들어오는 월세를 선호합니다. 세입자들도 전셋값이 오르는 데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전셋집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아졌습니다. 전세 수요 일부가 월세로 넘어가면서 월세 가격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전세 지우기’에 나서는 점도 물량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입니다. 대표적으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가입 기준을 기존 공시가격의 150% 수준에서 126% 수준으로 낮췄고 수도권에서는 갭투자에 활용되던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도 제한했습니다. 최근에는 전세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보증 한도를 축소하는 방향의 대책도 잇달아 내놓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공급 부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세입자들의 어려움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전세 물건이 줄어들면 세입자는 선택권 자체를 잃게 된다"며 "예전에는 마음에 드는 집을 고르는 시장이었다면 지금은 물건이 나오면 먼저 잡아야 하는 시장으로 변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서울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임대차 물건 감소가 계속되고 있는 만큼 전셋값과 월세 모두 상승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며 "공급 회복 없이는 세입자의 부담이 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15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122.5로 2021년 2월 셋째 주(122.8) 이후 약 5년 반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해당 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200에 가까울수록 집을 내놓는 집주인보다 집을 구하려는 실수요자가 많다는 뜻입니다. 0에 가까우면 그 반대입니다. 2021년은 직전 해 7월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시행 영향으로 신규 전세 물건이 줄면서 전셋값이 크게 오른 시기입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