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서울 강북권에서도 월세 300만원이 넘는 고가 임대차 계약이 잇따르고 있다. 입주 물량 감소와 전세대출 규제, 집주인의 월세 선호 등이 맞물린 영향이다. 강남 일부에 국한됐던 ‘고가 월세’가 서울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무주택 서민의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자산 격차가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1일 부동산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전·월세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49.8%로 절반에 육박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는 156만6000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1년 전(141만5000원)보다 약 10.7% 올랐다. 올해 1~5월 서울에서 체결된 월세 300만원 이상 거래는 3688건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3078건)보다 19.8%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강북권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은 월세 300만원 이상 거래가 지난해 한 건도 없었지만 올해 7건으로 늘었다. 성북구는 5건에서 12건으로, 은평구는 5건에서 15건으로 증가했다. 동대문구도 18건에서 48건으로 급증했다. 동대문구 청량리역한양수자인그라시엘 전용면적 84㎡는 이달 들어 거래된 월세 5건 중 4건이 300만원을 웃돌았다.
전문가들은 전세 물량 감소를 고가 월세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서울의 전세 매물(지난 18일 기준)은 1만9541건으로 1년 전보다 22.4% 줄었다. 신규 입주 물량 축소와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증가, 다주택자 규제에 따른 임대 물량 감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 오피스텔 수요가 줄고 아파트 선호 현상이 강해져 전세 품귀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전세 물량 부족이 지속되면서 월세가 빠르게 오르고 있다”며 “월세는 매달 현금 지출이 발생하는 만큼 무주택자의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내 집 마련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전역 월세가격 급등…상승률 사상 최고
강북 포레나 월세 310만원 거래…노원·동대문서도 고액월세 속출지난달 서울 강북구 미아동 한화포레나미아 전용면적 84㎡는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310만원으로 거래됐다. 같은 주택형이 지난 4월 월세 265만원(보증금 동일)에 계약된 것과 비교하면 한 달 새 45만원 오른 것이다. 인근 미아동 K공인중개소 관계자는 “대출 규제와 입주 물량 부족이 겹치면서 집주인이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분위기”라며 “세입자들이 고가 월세로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 비중이 전세와 맞먹을 정도로 빠르게 늘고 있다. 여기에 강남권 고소득층 중심으로 형성된 고액 월세 거래가 강북 등 서울 외곽 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전세 물량 감소와 아파트 선호 현상이 맞물리며 서울에서 이른바 ‘월세 300만원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세 300만원 넘는 거래 3688건21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월세가격지수 상승률은 0.81%(주택종합)로 2015년 6월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가장 높았다. 아파트 월세지수만 봐도 서울은 0.95% 올라 역대 최고치를 나타냈다.
고액 월세 거래는 더 이상 강남권만의 얘기가 아니다. 노원구 노원롯데캐슬시그니처 전용 85㎡는 3월 보증금 1억5000만원, 월세 300만원에 거래됐다. 동대문구 청량리역한양수자인그라시엘 전용 84㎡는 이달 체결된 월세 5건 중 4건이 300만원을 넘었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에 따르면 올해 1~5월 서울에서 월세 300만원 이상 거래는 368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8% 증가했다. 동대문구(18건→48건), 은평구(5건→15건), 강서구(3건→13건), 성북구(5건→12건) 등 강북권과 외곽 지역을 중심으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노원·도봉·강북구에서도 지난해엔 없었던 월세 300만원 이상 거래가 올해 7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전세 물량 감소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서울 전세 매물은 1만9541건으로 1년 전보다 22.5% 줄었다. 입주 물량 감소와 계약갱신청구권 행사 증가, 전세 사기 이후 빌라 기피 현상,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에 따른 실거주 수요 확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전세 공급 부족은 전세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서울 전세가격지수 상승률은 1.15%로 2015년 4월 이후 가장 높았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갱신계약 비중은 45.38%에 달했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세입자들이 월세를 선택한다기보다 전세 물량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밀려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월세 수요, 매매로 전환 가능성도전문가들은 임대차 시장 불안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1~4월 서울 아파트 착공 물량은 4564가구로 2011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후 같은 기간 기준 최저치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공급 부족 속에 월세 비중 확대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향후 세제 개편 등으로 보유 비용이 증가하면 월세 상승 압력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월세 상승은 서민의 주거비 증가를 넘어 자산 형성 기회를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 교수는 “전세는 목돈을 장만해 내 집 마련으로 이어지는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 왔지만 월세는 매달 현금 지출이 발생해 자산 축적이 쉽지 않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고액 월세가 매매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월세 300만원은 현재 금리 기준으로 6억원 규모 주택담보대출(30년 기준)의 원리금 상환액과 비슷한 수준이다. 윤수민 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매달 300만원 안팎의 주거비를 부담해야 한다면 차라리 주택 매수를 고려하는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며 “과거에는 전세와 월세 관계를 중심으로 시장을 분석했다면 이제는 매매와 월세를 비교해야 하는 시장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영연/구은서/박종필 기자 yy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