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강국' 한국의 新무기 되나…탄소시장 규칙 짜는 GGGI

입력 2026-06-21 14:23

한국에는 ‘21세기 핵심 과제’를 다루는 국제기구가 두 곳 있다. 서울에 본부를 둔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와 인천 송도의 유엔 산하 녹색기후기금(GCF)이다.

두 기구는 각각 2012년과 2013년에 출범했다. 유엔이나 국제통화기금(IMF) 등에 비하면 역사는 짧다. 하지만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 전환을 통한 '공동 성장'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맡고 있다는 점에서 존재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가파른 성장세김상협 GGGI 사무총장(사진)은 21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아시아개발은행(ADB)을 만들고, 중국이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활용하듯 한국도 GGGI 같은 국제기구를 글로벌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고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GGGI의 역대 첫 한국인 사무총장이다. 현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GGGI 의장을 맡고 있다.

GCF가 기후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기관이라면, GGGI는 각국 정부와 함께 정책을 설계하고 투자 가능한 프로젝트를 발굴하는 기관이다. 김 총장은 "세계무역기구(WTO)나 글로벌 금융질서의 규칙과 제도는 그동안 주로 선진국이 만들었다"며 "이제는 한국도 국제 탄소시장과 기후 정책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제도를 설계하는 나라가 될 수 있는지 시험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주목하는 대표 사례가 '글로벌 자발적 탄소시장(GVCM)'이다. 기업과 정부가 국내외에서 추진한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고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제도다. GGGI는 현재 한국 재정경제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과 함께 GVCM 체계를 설계하고 있다. 2029년 운영을 목표로 올해부터 운영 규칙과 인증 방법, 등록 시스템 등을 마련하고 있다.

김 총장은 "국내 대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은 AI 시대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어떻게 친환경적으로 확보하느냐에 있다"며 "기업의 에너지 효율 개선 성과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연말까지 구체적인 방법론과 로드맵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GGGI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출범 당시 16개국이었던 회원국은 최근 이사회 참여까지 성사된 룩셈부르크를 포함해 현재 총 55개국으로 늘었다. 인도는 지난달 한-인도 정상회담에서 GGGI 가입 의사를 공식화했다. 이집트도 최근 가입 의향서를 제출했다.

재정 규모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GGGI 수입은 전년보다 약 20% 증가했다. GGGI가 조성한 녹색금융 규모는 누적 180억달러에 이른다. 지난해에만 약 40억달러 규모의 녹색금융 조성에 기여했다. 김 총장은 "전 세계적으로 공적개발원조(ODA)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차별화된 노력들을 통해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성장 동력 중 하나는 파리협정 제6조를 통한 국제 탄소시장의 확대라 할 수 있다. 파리협정 6조는 국가 간 탄소 감축 실적 거래를 허용한 국제 규칙이다. 이에 따라 한 국가가 달성한 감축 실적을 다른 국가가 자국의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 달성에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국가 간에 이전·거래되는 감축 실적을 ITMO라고 한다.민관 혼합금융 도모문제는 이런 거래가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매국과 판매국을 연결하고, 거래 구조를 설계하고, 추가 감축 실적을 검증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국제 탄소시장이 커질수록 GGGI의 존재감도 덩달아 커지는 이유다.

GGGI는 2년 전 파리협정 6조에 따른 국제 탄소거래를 지원하기 위해 탄소거래 플랫폼(CTF)을 출범시켰다. 국제 탄소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정책 자문에 머물지 않고 감축 실적 거래와 투자까지 지원하는 역할로 활동 범위를 넓힌 것이다.

현재 노르웨이, 스웨덴, 뉴질랜드, 영국, 싱가포르 등 5개국이 참여해 약 2억달러 규모의 자금이 조성됐다. 노르웨이는 이를 통해 잠비아의 재생에너지 사업에서 발생하는 탄소 감축 실적 350만t을 구매하기로 했다. 김 총장은 “앞으로 여러 국가에서 중요한 거래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경우 지난해 산업통상부가 GGGI와 함께 국내 기업 베리워즈의 캄보디아 전기오토바이 보급 사업을 통해 약 40만t의 탄소 감축 성과를 가져오기로 했다.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에 반영된 국제감축 3750만t 달성을 위한 첫 삽을 뜬 셈이다.

김 총장은 "한국이나 일본처럼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가는 국내 감축만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쉽지 않다"며 "국제감축은 산업계에 유연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개도국에는 투자와 기술협력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다만 2035년 NDC에서는 국제감축분을 2980만~3400만t으로 하향 조정했다.

김 총장은 기후위기 대응에 정부 재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전 세계 기후금융 수요와 실제 공급 사이에는 수조 달러 규모의 격차가 존재한다"며 "민간 자본의 참여 없이는 녹색 전환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자금이 먼저 위험을 분담하고 민간 자금을 끌어들이는 '혼합금융'이 중요해지고 있다"며 "한국 정부가 시중은행 등이 참여하는 기후금융 플랫폼 구축을 추진 중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GGGI는 최근 총장 직속 민관협력(PPP) 조직을 신설했다. 글로벌 금융기관과 민간 기업의 참여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김 총장은 "과거 국제기구가 정부, 다자개발은행(MDB) 등과의 협력을 중심으로 움직였다면 GGGI는 앞으로 민간 부문과의 협력도 크게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GGGI는 최근 AI와 기후기술을 미래 핵심 사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AI를 활용해 탄소 감축 데이터를 측정·검증하는 비용을 줄이고, 기후 취약국의 재난 대응 역량을 높이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또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함께 기후기술 실증 펀드(CTAF)를 운영하며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도 지원하고 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