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조사한 근로감독관이 피해자 측으로부터 법왜곡죄를 포함해 무려 8개 혐의로 고소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감독관은 고용노동부 직원 중 '법왜곡죄' 1호 피소자가 됐다. 악성 민원이 적지 않은 현장에서 법왜곡죄까지 시행되면서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들의 법적·심적 부담이 급격히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직장내괴롭힘 아니다" 판단했다가...8건 고소 당해11일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3월 12일 법왜곡죄 시행 이후 처음으로 고소·고발당한 고용노동부 공무원이 나왔다. 해당 공무원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담당한 근로감독관으로, 사건을 조사한 뒤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가 민원인으로 고소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민원인 측은 담당 근로감독관을 법왜곡죄를 포함해 직무유기, 직권남용권리행사 방해죄 등 총 8개 죄목으로 고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왜곡죄는 수사·재판·행정 처분 등 법 적용 업무를 맡은 공무원이 고의로 법을 왜곡해 적용할 경우 처벌하는 규정으로, 올해 3월부터 시행됐다. 법 적용 공무원의 책임성을 높이자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현장에서는 민원인의 고소·고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왔다. 실제 법적용이나 처벌 여부와 관계 없이 근로감독관 등 특수사법경찰관의 권한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노동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시각이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가 부당한 결론에 맞서 법적 수단을 동원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법왜곡죄를 고소 협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고소 남용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고용노동부 안팎에서는 이번 1호 사건이 일선 근로감독관들에게 충격을 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특히 문제가 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은 판단 기준이 모호하고 당사자 간 주장이 엇갈리는 경우가 많아, 어떤 결론을 내려도 한쪽의 반발을 사기 쉬운 구조다. 여기에 법왜곡죄라는 새로운 법적 위험까지 더해지면 감독관들이 명확한 사례가 아닌 경우 판단 자체를 회피하거나 소극적으로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현장에서 급증세다. 2019년 도입 이후 2021년 7774건에 그쳤던 신고 건수는 2025년 1만6373건으로 늘었다. 한 근로감독관은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맡았다가 민원인의 화풀이 대상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직장내괴롭힘법’은 ‘감독관괴롭힘법’이라는 푸념까지 나온다”고 했다.◆노동부 피소 공무원, 5년간 521명…법률지원은 81건뿐이번 사례는 고용노동부 공무원들이 평소 얼마나 많은 법적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5월까지 5년여간 업무 수행 중 민원인으로부터 고소·고발당한 고용노동부 공무원은 총 521명에 달한다. 직무유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주거침입 등 혐의가 대부분이었다.
고용노동부는 해당 공무원에 대해 수사기관 출석 요구 시 공무원책임보험 등을 통한 법률 지원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기간 고용노동부가 실시한 법률 지원은 변호사 자문·상담·선임 등을 합쳐 81건에 그쳤다. 피소 건수(521명) 대비 법률 지원 비율이 15%대에 불과한 셈이다.
조사 결과에 불만을 품은 민원인이 여러 혐의를 묶어 고소에 나서는 상황이 반복될 경우, 근로감독관들이 소신 있는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법왜곡죄 시행으로 고소·고발 건수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현재의 법률 지원 체계가 충분한지에 대한 논란도 불가피해 보인다.
김위상 의원은 "법왜곡죄가 공직자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취지는 맞지만, 현장 공무원들이 고소·고발 위협에 위축되지 않도록 법률 지원 체계를 대폭 강화하고 남용적 고소에 대한 제도적 방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