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인공지능(AI) 수요 폭증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가격 급등을 이유로 제품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 아이폰18 프로 가격이 전작보다 200달러가량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AI 서버 투자가 스마트폰과 PC 등 소비자 전자제품 가격까지 밀어 올리는 ‘칩플레이션’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팀 쿡 "아이폰 가격 인상 불가피"
18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17일(현지시간) “안타깝지만 가격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에게 전가되는 엄청난 인상분을 최소화하고 소비자를 보호하려 최선을 다했지만 상황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고 말했다.
쿡 CEO는 구체적인 인상 시점과 규모, 대상 제품은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애플의 다음 주요 신제품 출시가 오는 9월 아이폰18 라인업으로 예상되는 만큼 시장에서는 아이폰 가격 인상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맥과 아이패드는 그보다 앞서 가격이 조정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WSJ는 리서치업체 테크인사이트 분석을 인용해 아이폰18 프로 시작 가격이 1299달러 수준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현재 아이폰17 프로 시작 가격인 1099달러보다 200달러 높은 가격이다. 국내에서도 가격 인상 압박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 아이폰17 프로의 국내 출고가는 256GB 기준 178만2000원이다. 미국 가격 인상분 200달러를 단순 환산하면 20만~30만원 수준으로, 차기 프로 모델의 국내 출고가가 200만원대에 진입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글로벌 빅테크社, 데이터센터 경쟁에 '칩플레이션'가격 인상의 배경은 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플랫폼, 아마존 등 빅테크가 AI 인프라 투자를 늘리면서 서버용 메모리 수요가 급증했다. D램과 낸드플래시 등 핵심 부품 가격이 뛰자 스마트폰·PC 제조사들의 원가 부담도 커지고 있다.
스마트폰 가격 인상 압박은 애플에만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삼성전자 갤럭시 S·Z 시리즈 등 프리미엄 스마트폰도 고용량 D램과 낸드를 탑재한다. 온디바이스 AI 기능이 확대되면서 스마트폰에 필요한 메모리 용량은 더 커지는 추세다. AI 기능을 원활히 구동하려면 기존 모델보다 더 많은 D램과 저장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를 자체 생산한다는 점에서 애플보다 부담을 일부 흡수할 여지가 있다. 하지만 시장 가격이 급등하면 내부 조달을 하더라도 기회비용은 커질 수밖에 없다. 고가 메모리를 외부 고객에게 판매할 수 있는 상황에서 스마트폰 사업부가 이를 낮은 비용으로 쓰기는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차기 갤럭시 시리즈와 폴더블폰도 원가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폴더블폰은 가격 인상 압박이 더 크다. 폴더블 디스플레이와 힌지 등 기존에도 원가가 높은 부품을 쓰는 데다, AI 기능 확대에 따라 메모리 사양까지 높아질 가능성이 있어서다.
노트북·데스크톱 가격도 줄줄이 오르나PC 시장도 비슷한 압박을 받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 PC 등 AI PC 확산으로 노트북과 데스크톱에 탑재되는 메모리 용량이 늘고 있다. AI 기능을 기기 안에서 처리하려면 고성능 칩뿐 아니라 충분한 D램과 저장장치가 필요하다. 메모리 가격 상승이 장기화하면 PC 업체들도 출고가를 올리거나 저장장치 용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AI 서버가 메모리 시장의 우선순위를 바꿔 놓은 것이 핵심이다. 주요 메모리 업체들은 수익성이 높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 생산에 투자 여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스마트폰과 PC에 들어가는 범용 D램과 낸드 공급 확대는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AI 투자가 서버와 클라우드 비용만 올리는 게 아니라 소비자 단말 가격에도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며 “아이폰 가격 인상 가능성은 AI발 칩플레이션이 일반 소비자 시장으로 번지는 신호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