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전력의 5개 발전자회사를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2001년 전력산업 구조 개편으로 한전에서 떨어져 나온 발전 5개사를 25년 만에 다시 묶는 것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18일 서울 한전아트센터에서 ‘에너지전환기 전력공기업들의 새로운 역할 연구’ 중간보고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의 발전공기업 개편 방향을 공개했다. 현재 공공 발전 부문은 한국수력원자력과 발전 5사로 이원화돼 있다. 한수원은 원전과 양수발전을, 한국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 등 발전 5사는 화력발전과 일부 재생에너지사업을 담당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말 기후부 업무보고에서 발전 공기업을 대표적인 통폐합 대상으로 거론했다.
연구용역을 맡은 삼일PwC는 5개 발전 공기업 체제에서는 탈탄소 목표를 맞추면서도 인공지능(AI)발 전력 수요에 대응하는 국가 차원의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봤다. 자본력이 분산돼 대규모 투자를 실행에 옮기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삼일PwC는 권역별 2~3개 회사로 재편하는 방안과 지주회사 체제를 갖추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규모의 경제를 통해 에너지 전환에 속도를 내기 위해선 발전 5사를 하나의 법인으로 합치는 ‘1사 통합안’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기후부는 중간보고 결과를 토대로 전문가와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한 뒤 다음달 최종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발전공기업, 25년 만에 1개사로 통폐합 유력
비효율 없애고 규모의 경제 확보정부가 한국전력 5개 발전자회사를 하나로 통폐합하기로 한 건 2040년 탈석탄과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선 공공 발전 부문이 규모의 경제를 갖춰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해상풍력 등 대규모 에너지 전환 사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전략을 짜는 컨트롤타워와 자본력을 한 곳으로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붕어빵 공기업’ 비효율 없앤다기후에너지환경부의 의뢰로 발전공기업 개편 용역을 수행한 삼일PwC는 18일 중간발표회에서 개편안 마련의 4대 원칙으로 에너지 전환 실행력, 리스크 저감 구조, 운영 효율성, 정의로운 전환 등을 제시했다. 이를 기반으로 1개 통합 법인, 권역별 2~3개 통합회사, 지주회사 및 권역별 자회사 체제 등 3개 안을 검토한 결과 ‘완전 통합’을 최적의 방안으로 제시했다.
발전 공기업 5사는 2001년 전력시장 구조 개편 과정에서 한전의 발전 부문이 분할되며 출범했다. 발전·송전·판매에 걸쳐 경쟁 체제를 구축한다는 취지였지만 다음 목표인 민영화가 노조 반발로 무산되며 절반짜리 개혁에 그쳤다. 이후 발전 5사는 사업 구조와 경영 방식이 비슷해 ‘붕어빵 공기업’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말 업무보고에서 발전공기업 통폐합 검토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정부도 구체적인 개편 방안 마련에 나섰다.
삼일 PwC는 발전공기업 개편의 핵심 목적이 ‘에너지 전환 실행력 확보’라고 보고 통합 1사 체제가 가장 적합한 대안이라고 판단했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이정규 삼일PwC 상무는 “에너지 전환에 성공한 주요 국가는 대부분 통합된 사업 구조를 기반으로 대규모 투자를 집행했다”고 설명했다. 덴마크 국영 에너지기업 오스테드와 일본 제라 등을 대표 사례로 소개했다. 화석연료 중심 기업이던 오스테드는 대규모 투자 역량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 해상풍력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이 상무는 “권역별 통합도 검토했지만 실질적 경쟁 효과는 크지 않은 반면 현재와 비슷한 형태의 ‘가짜 경쟁’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지주회사 체제는 이중 의사결정 구조로 거래 비용이 증가하고 자회사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재생에너지 전담 공기업’ 설립안은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태양광, 풍력 등 특정 전원에 의존하는 단일 포트폴리오는 시장 변동성과 정책 변화에 취약해 안정적인 투자와 위험 분산에 한계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역 이해관계 조정 등 과제 산적삼일PwC는 이른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도 1개 회사 통합안이 낫다고 강조했다. 정의로운 전환은 점차 사라질 화력발전 인력을 재생에너지 등으로 순조롭게 전환 배치하는 게 핵심이다. 삼일PwC는 현재처럼 발전사별로 인력을 관리하는 구조보다 단일 법인이 인력을 재배치하기 더 수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통합까지는 특별법 제정과 본사 기능 조정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특히 본사 소재지와 조직 배치 문제는 지역사회의 이해관계가 걸린 민감한 사안이다. 이에 대해 삼일PwC는 특정 지역으로 본사를 이전하기보다 기존 발전사 본사 인프라를 활용하는 다수 거점 체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발전사 통합이 전력시장 경쟁을 약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패널 토론에서 하윤희 고려대 교수는 “각 사는 현 체제에서 연료 조달 비용 절감, 해외 사업 등에서 경쟁을 펼쳐왔다”며 “모든 발전사를 하나로 묶으면 이런 도전과 혁신의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유수 숭실대 교수는 “발전사 통합은 거대 독점 공기업을 만드는 것”이라며 “통폐합보다는 발전사들이 새로운 사업과 판매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리안/박종관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