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호황에도 자금이 은행 단기예금으로 몰리고 있다. 은행 예금에 돈을 넣고 빼는 속도는 10년 만에 최고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주식 투자와 수출로 돈을 번 개인과 기업이 단기 상품에 여윳돈을 넣고 탄력적으로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불어나는 초단기예금
1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국내 은행의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23.1회로 지난해 4월의 18.2회에 비해 4.9회 상승했다. 코로나19 발생 직후인 2022년 4월(14.7회)보다 8.4회 뛰었다. 이 지표는 지난해 12월 23.6회로 오르며 10년 만에 최고치를 찍은 뒤 올 3월부터 두 달 연속 23회 이상을 기록했다. 예금 회전율은 예금 지급액을 평잔액으로 나눈 것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소비나 투자를 위해 예금 인출이 자주 이뤄졌다는 의미다.
예금 인출뿐 아니라 유입도 늘었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 16일 기준 요구불예금 잔액은 703조2071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29조1987억원 불어났다. 같은 기간 증시 대기 자금인 투자자 예탁금은 36조7225억원(41.8%) 증가했다. 언제라도 주식 투자 자금을 동원할 수 있도록 수시입출식 통장에 돈을 보관해두는 투자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은행 정기예금에 넣은 돈은 연 2~3%대 금리로 일정 기간 묶인다.
개인은 마이너스통장에서 빌린 돈으로도 투자와 회수를 반복하면서 증권사 계좌와 수시입출식 통장 사이에서 자금을 옮기고 있다. 5대 은행의 지난 16일 마이너스통장 대출 잔액은 43조2216억원으로 올 들어 3조5000억원가량 증가했다.
기업 자금도 비슷하게 움직였다. 5대 은행의 기업 요구불예금은 지난해 말 234조원에서 지난달 말 247조6000억원으로 13조원 이상 증가했다. 증가액 대부분이 수시입출식예금(MMDA)이다. MMDA는 언제든 넣고 뺄 수 있는 예금으로 하루만 맡겨도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예치한 금액이 많을수록 금리도 높다. 지금처럼 금리 상승기에는 나중에 더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짧게 자금을 굴린 뒤 더 높은 금리로 예금에 넣으려는 기업 수요가 늘어난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자를 받기 위해 일부 잉여현금을 MMDA에 넣고 있다.
자금 예치 기간이 줄어든 가운데 성과급 지급, 주주환원, 이자 등 예기치 못한 비용이 늘면서 기업의 자금 회전 주기가 짧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4월 기업어음 발행에 쓰이는 당좌예금 회전율은 750.3회로 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금리 상승기 유동성 더 빠르게 순환금융권에선 연이은 금리 상승으로 시중 유동성이 더욱 빠르게 순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은행 예금금리 산정에 활용되는 1년 만기 은행채 금리는 지난 16일 연 3.565%로 올 들어 0.748%포인트 올랐다. 이란 전쟁으로 물가 급등 우려가 커진 가운데 한국은행이 지난달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주요 채권금리를 밀어 올리고 있다.
이 같은 변화를 반영해 은행도 예금 금리를 줄줄이 높이는 추세다. SC제일은행(연 3.75%)과 전북은행(연 3.7%), 제주은행(연 3.7%), 광주은행(연 3.64%)은 저축은행과 비슷한 예금금리를 주고 있다. 카카오뱅크(연 3.1%)와 케이뱅크(연 3.1%), 토스뱅크(연 3%) 등 인터넷은행은 3개월 만기 예금에 연 3%대 금리를 내걸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기준금리가 오를 가능성이 커 만기가 1년 이상인 정기예금에 돈을 넣기 꺼리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며 “이 같은 변화가 증시 투자 열기와 맞물리면서 은행 예치 기간이 짧아지고 자금 유출입은 빈번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진성/장현주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