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에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는 진보와 평화, 번영의 한 세기를 기념하는 행사였다. 마거릿 맥밀런은 ‘평화를 끝낸 전쟁’에서 파리 박람회를 서양 문명, 산업, 무역, 과학, 기술, 예술의 비상한 업적을 보여주는 기념비적 행사라고 평했다.
나폴레옹 전쟁을 겪은 후 19세기 유럽은 산업혁명을 발판 삼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물론 유럽이 전쟁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등이 있었지만 유럽 전역이 전화(戰禍)에 휩싸인 나폴레옹 전쟁과는 비교할 바가 아니다. 철도, 전신, 전화, 전기, 철강, 내연기관, 화학, 증기선 등 각 분야 진보는 비약적이었다. 평화의 세기를 보내면서 전쟁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유럽 경제가 상호의존으로 묶인 상태에서 파괴를 부르는 전쟁은 상상 밖처럼 여겨졌다. 그런데도 유럽이 진보의 열매를 포기해야 할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왜 제1차 세계대전 참화 속으로 빨려들어 갔을까.
파리 박람회의 화려함 이면엔 군사 대결을 암시하고 있었다. 치열한 기술 발전 경쟁 속에는 두려움과 불안,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 “기술 변화 자체가 전쟁이나 평화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변혁이 빠르고 폭넓게 나타날 때 정치 지도자들은 평시에는 뒤처지는 것에 대해, 전쟁 위협이 닥치는 시기에는 빠른 속도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한다”(오드 아르네 베스타 ‘폭풍이 온다’). 신무기, 군비 경쟁은 식민지 제로섬 경쟁 속에서 이런 두려움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1차 대전 이전 대량살상무기들이 대거 등장한 배경이다. 항공기와 잠수함, 폭발물, 대형 장거리 포, 독가스, 신형 기관총 등. 파리 박람회장엔 각국 무기 전시 공간이 설치됐고 “전쟁은 인류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란 설명 책자도 비치됐다. 독일의 한 장군은 “강한 국가는 자연의 보편적 질서 속에서 자기의 힘을 입증한다”고 했다(‘평화를 끝낸 전쟁’).
독일 급부상에 영국 견제…지금의 미·중 대결 연상
1900년대 들어 국제질서는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질서 유지의 축이던 영국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독일, 러시아, 프랑스가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 했다. 독일의 급부상이 두드러졌다. 1870년 영국은 세계 제조업 생산의 32%를 차지했고 독일은 13%였다. 1913년엔 영국 13.6%, 독일 14.8%로 역전됐다. 1893년 독일의 강철 생산은 영국을 추월했고 1914년 두 배가 됐다. 독일 국내총생산(GDP)은 1910년 영국을 넘어섰다. 양국 간 세계 교역량 비중도 급격하게 좁혀졌다. 영국에선 자유무역 회의론이 제기됐다. 이는 1903년 독일을 겨냥, 보호무역을 강화하는 조지프 체임벌린의 관세 개혁으로 이어졌다. 관세 개혁은 국내 반발로 수포로 돌아갔지만 독일에 대한 영국의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잘 보여준다. 영국은 식민지 경쟁에 뛰어든 독일에 따라 잡힐 수 있다는 공포로 해군력 확충에 나선다. 독일은 전함 건조 박차로 맞선다.
국제질서를 이끌 강대국의 부재 속에 서로에 대한 불안감은 동맹으로 편을 갈랐다. 영국은 프랑스·러시아와 손을 잡았고 독일은 오스트리아·이탈리아와 짝을 이뤘다. 상대국 부상에 대한 두려움이 동맹을 낳고 동맹의 뒷받침은 긴장을 부른다. 동맹은 안보 안전판이라고 여기지만 위기 시 자동개입은 모두를 전쟁으로 끌어들여 판을 키운다. 사라예보 총성이 1차 대전으로 비화한 것도 동맹이라는 판이 짜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원하든 그렇지 않든 유럽 주요국들은 벼랑 끝 대결에 자동으로 뛰어들어 갔다. 균형추 역할을 하는 강대국이 없는 세력균형은 본질적으로 혼란을 부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1차 대전에서 증명된다. 국제정치가 무질서해질수록 충돌은 더 참혹해지는 법이다(할 브랜즈 ‘유라시아 지정학’).
지금 국제 정세가 일촉즉발의 1차 대전 직전과 닮았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맥밀런은 “전 세계를 짓눌렀던 1차 대전 개전(開戰)의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20세기 초 급부상하는 독일에 대한 영국의 공포는 오늘날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두려움과 중첩된다. 그레이엄 엘리슨은 1세기 넘는 시차를 두고 벌어진 이 두 사례를 두고, 떠오르는 강대국에 위협을 느낀 기존 강대국이 견제에 나서면 전쟁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는, 논란 많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으로 설명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앞에서 “미·중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뛰어넘고 대국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는가”라고 한 것은 중국을 패권국으로 인정해달라는 요구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이 동맹 관계를 복원한 것도 미국 등 서방 위주의 국제질서를 흔들려는 판짜기다. 1차 대전 직전 영국과 독일의 상호의존적인 교역은 지금 미국과 중국의 무역 구조를 보는 것 같다. 1세기 전 관세로 독일을 견제하려 했던 영국의 시도는 트럼프의 대중국 관세전쟁을 연상케 한다.
국제 규범·규칙 약화, 1차 대전 전 혼란과 겹쳐
오늘날 국제 규범을 정하고 유지시킬 힘이 약화된 것은 1차 대전 직전의 혼란상과 겹쳐 보인다는 지적도 적잖다. 미국의 선택적 고립주의로 인해 다자주의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미국의 목표가 중국의 경제성장을 막는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면 군사적 행동으로 번질 가능성은 상당하다(‘폭풍이 온다’). 1차 대전 이전 오스트리아가 신흥 강국 독일을 선택했듯, 서방에 대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두려움이 떠오르는 중국으로 다가가게 한다. 유엔은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로버트 D 카플란은 ‘질서의 종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유엔의 무기력한 소프트파워와는 대조적으로 국가들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강력한 군사력의 세계를 반영하는 사건’으로 규정했다. 세계 질서나 규칙 기반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란 전쟁에서 봤듯 미국이 트럼프식 새로운 규범으로 국제질서를 규율한다는 반론도 만만찮기는 하다.
이런 논란과 별개로 군비 경쟁, 신무기의 등장은 1차 대전 직전과 비슷하다. “인공지능(AI), 로봇, 드론, 양자컴퓨터 등은 군사혁명을 가져오고 있고 1914년 이전 전기와 엔진이 지녔던 것과 동일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발전이 만들어내는 세계는 최초로 파국적인 대전(大戰)을 가져온 세계만큼이나 불확실하고 위협적이다.(‘폭풍이 온다’)” 신형 첨단무기들은 ‘전쟁 패러다임 시프트’를 가져오고 있다. 무기의 정밀성과 파괴력이 클수록 실전에서 사용하고 싶은 충동은 억지되지 못하는 법. 국가가 목표를 달성하는 다른 길을 찾지 못했을 때 전쟁은 여전히 합리적 수단으로 보인다(‘평화를 끝낸 전쟁’).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금 세계 곳곳이 전쟁터가 됐고 첨단 무기의 시험장이 되고 있다. 이란전이 끝내기 수순에 접어들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렇게 동시다발 전쟁은 유례가 없다. 기술의 진보, 이성과 합리성이 평화와 안정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 1차 대전의 경험은 1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경제 상호의존이 전쟁을 막을 수 없으며 경제 산업적 진보가 평화를 보증하는 게 아니라 전쟁의 동기가 되고 군사기술을 추동해 경제를 파괴한다는 역설은 시간을 초월해 변하지 않고 있다.(②회에 계속)
홍영식 한국핵안보전략포럼 운영위원(전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