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그래미 시상식이 K팝의 위상을 반영하는 새로운 상을 신설했다.
포브스 등 외신은 16일(현지 시간) 그래미를 주최하는 레코딩아카데미가 오는 2월 개최될 제69회 그래미 어워드에 '최우수 아시아 팝 음악 퍼포먼스'를 포함한 5개의 새로운 부문이 신설될 것이라 발표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번번이 그래미에서 외면당했던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이번엔 트로피를 받을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K팝은 최근 몇 년 사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악이자 주류 반열에 올랐지만, 미국 주요 음악 시상식에서 서구 뮤지션에게 밀려 외면당해왔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 신설은 업계 최고 권위의 시상식에서 아시아 뮤지션들을 위해 마련된 가장 구체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라는 평이다.
레코딩아카데미의 공식 규정집에 따르면, 최우수 아시아 팝 음악 퍼포먼스 부문은 "K팝, J팝, C팝을 포함하되 이에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 시장에서 유래했거나 널리 알려진 아시아 팝 음악 퍼포먼스의 예술적 우수성을 인정하는 부문으로, 하나 이상의 아시아 언어를 의미 있게 사용한 경우를 대상으로 한다"고 정의한다.
그래미 최고경영자(CEO) 하비 메이슨 주니어는 이러한 변화가 세계적인 음악 감상 트렌드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메이슨은 그래미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변화는) 음악계 구성원들이 다양하고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기념할 기회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을 공유해 주면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번 발표가 K팝과 그래미의 오랜 긴장 관계 끝에 나온 것이라는 반응도 있다. 포브스는 "K팝을 서구 시장에 가장 널리 알린 그룹으로 꼽히는 방탄소년단은 2020년 그래미상 후보에 처음으로 올랐고, 그들의 첫 영어 싱글이자 서구 시장 진출을 겨냥한 '다이나마이트'(Dynamite)는 최우수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로 지명됐지만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레인 온 미'(Rain on Me)에 밀려 수상에는 실패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2022년 '버터'(Butter), 밴드 콜드플레이와의 협업곡 '마이 유니버스'(My Universe)로 다시 한번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이 불발된 사실을 소개하며 "'버터'는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무려 10주 동안 1위를 차지했음에도 수상에 실패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래미 시상식은 올해 구조적인 부문 개편 없이도 글로벌 대표성 측면에서 상당한 변화를 보여줬다. 방탄소년단이 소속사인 하이브에서 K팝 시스템을 접목시킨 현지화 걸그룹 캣츠아이가 최우수 신인 아티스트 후보로 메들리 공연을 펼쳤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OST로 이재가 부른 '골든'이 최우수 뮤직비디오 작곡상을 수상했다.
더불어 그룹 블랙핑크 로제가 팝가수 브루노 마스와 함께 부른 '아파트'(APT) 역시 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노래상, 최우수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상 후보에 올랐다. 다만 그래미는 로제에게도 트로피를 전달하지 않았다.
그래미의 아시아 팝 부문은 아시아계 아티스트라면 누구든 아우르는 포괄적인 분류 체계라기보다는, 새롭게 추가된 섹션은 아시아 시장을 위해 아시아 언어로 제작된 음악, 즉 한국어로 된 K팝, 일본어로 된 J팝, 중국어나 광둥어로 된 C팝과 같은 특정한 음악적 특성과 문화적 산물을 포착하기 위해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해 세븐틴, 에스파, 르세라핌 등 주로 한국어로 음악을 발표하고, 가끔 영어 곡을 수록하는 그룹들에게도 자격이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세계적인 인기를 위해 영어로 된 곡을 발표하는 K팝 아티스트가 워낙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규정은 오히려 한국어 가사가 주를 이루거나 최소한 '의미 있는' 수준의 한국어 가사를 사용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세계 시장을 겨냥해 영어 가사를 늘려왔던 지금의 행보에서, 한글 가사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
미국 대중문화 시상식 예측 사이트를 운영하는 매체 골드더비는 "그래미 (부문이) 확대되면서 방탄소년단과 (컨트리송 가수) 엘라 랭글리에게 좋은 소식 됐다"고 평했다.
한편 이 같은 새 규정이 적용되는 제69회 그래미상 시상식은 내년 2월 7일 열릴 예정이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