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비밀노트]
서울 압구정동 아파트를 소유한 A씨는 아내 B씨와의 사이에 자녀 C씨, D씨를 뒀다. 몸이 아팠던 A씨는 본인 사후에 B씨가 계속 압구정동 아파트에서 거주하면서 살다가 사망하면 그 아파트를 C씨와 D씨가 사이좋게 나눠 가지기를 바랐다.
A씨는 유튜브를 보다가 자신의 이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유언대용신탁이라는 이야기를 접하고 유언대용신탁 전문가로 알려진 K변호사를 찾아갔다. 그런데 압구정동 아파트를 신탁하고 싶다는 A씨의 얘기를 들은 K변호사는 "잘못하면 재건축 아파트를 날릴 수 있다"고 말했다. 무슨 사연일까.
유연한 사후 설계…유언대용신탁의 구조
유언대용신탁은 본인 소유의 재산을 수탁자에게 맡기면서 수탁자로 하여금 신탁 계약의 내용대로 상속재산을 관리하고 처분하도록 하는 제도다. 유언대용신탁은 유언이나 생전 증여와 비교해 훨씬 융통성 있는 사후 설계가 가능하기 때문에 상속의 새로운 수단으로 최근 주목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부모가 위탁자가 돼 재산을 수탁자에게 맡기면서 생전에는 부모 자신을 수익자로 하고 부모 사후에는 자녀들을 사후수익자로 지정한다.
예를 들어 건물을 신탁한 경우 위탁자인 부모 생전에는 부모 자신이 수익자이기 때문에 신탁재산인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수익은 부모가 취득하게 되고, 부모 사후에는 사후수익자로 지정된 자녀에게 신탁재산이 이전된다. 통상 금융 회사가 수탁자가 되지만, 반드시 금융 회사일 필요는 없고 일반 개인도 수탁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정법)에서는,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에서 조합설립인가(재건축의 경우) 또는 관리처분계획인가(재개발의 경우) 이후에 해당 건물이나 토지를 양도하는 경우, 그 건물이나 토지를 양수한 자가 조합원 자격을 취득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처럼 조합원 자격 취득이 금지되는 양도·양수에는 ‘매매나 증여, 그 밖에 권리의 변동을 수반하는 모든 행위’가 포함돼 있다. 다만 ‘상속이나 이혼으로 인한 양도·양수’의 경우에만 예외 사유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도정법 제39조 제2항).
따라서 이러한 도정법 규정하에서는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신탁재산인 부동산이 수탁자에게 이전되는 경우 그 수탁자는 조합원 지위를 취득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상속인들은 현금청산을 당하게 된다.
조합원 자격 박탈…현금청산의 함정
투기과열지구 안에 있는 아파트나 주택이 재건축 또는 재개발됐을 때 그 가치 상승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조합원 지위를 얻지 못하고 현금청산을 당하게 되면 그 손해는 엄청나다. 따라서 재건축 또는 재개발 가능성이 높은 주택이나 아파트를 유언대용신탁 하는 경우에는 투기과열지구 내에 있는지를 잘 살펴보고 진행해야 한다.
도정법이 이처럼 조합설립인가나 관리처분계획인가 이후의 양도에 대해 조합원 자격 취득을 엄격히 금지하는 이유는 바로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해서다. 그런데 유언대용신탁은 상속의 한 수단일 뿐 투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따라서 유언대용신탁을 한 경우에도 조합원 자격 취득을 금지하고 현금청산을 강요하는 것은 입법 취지에도 맞지 않는 매우 심각한 재산권 침해다. 앞으로 입법이나 판례를 통해 반드시 시정돼야 할 중대한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김상훈 법무법인 트러스트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