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초과 이익'은 혁신의 보상인가, 분배의 몫인가

입력 2026-06-15 18:04
수정 2026-06-16 00:28
반도체 붐이 만들어낸 ‘초과 이익’을 어떻게 사용할지가 한국 사회의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정부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반도체는 공공재”라며 삼성전자 등 반도체 기업의 이익에 대해 “재분배도 사회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반도체산업이 만들어내는 이윤을 미래를 위한 생산적 재투자로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바른 해법을 찾기 위해선 기업의 이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다. ◇ 이윤은 착취의 대가일까?

카를 마르크스는 이윤을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한 결과로 봤다. 그는 1만원짜리 물건엔 1만원어치 노동이 투입됐다고 생각했다. 그중 8000원만 노동자에게 임금으로 지급하고 2000원은 자본가가 가져가니 착취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가 생산에 투입된 노동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는 노동가치설이다.

1870년대 한계효용이론이 이런 논리를 무너뜨렸다. 윌리엄 제번스 등 한계효용학파는 상품의 가치가 소비자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고 봤다. 소비자가 느끼는 효용의 크기가 가격을 결정할 뿐 생산에 얼마나 많은 노동이 투입됐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상품 가격과 노동량이 무관하다면 이윤이 노동 착취의 결과라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는 한계효용이론의 연장선에서 이윤이란 위험을 부담한 대가라고 설명했다. 기업가가 실패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했는데, 결과적으로 성공했을 때 비로소 주어지는 것이 이윤이라는 얘기다. 조지프 슘페터는 이윤은 혁신의 대가라고 봤다.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거나 효율적인 생산 방법을 고안해낸 결과가 이윤이라는 것이다. 이즈리얼 커즈너는 이윤을 발견에 대한 보상으로 정의했다. 소비자의 욕구를 찾아내 효과적으로 충족시켰을 때 얻게 되는 것이 이윤이라는 설명이다.

이윤이 노동자를 착취한 대가라면 노동자에게 이윤을 나눠주는 것이 맞다. 하지만 소비자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혁신한 대가라면 이윤은 기업가와 주주에게 돌아가야 한다. ◇ 어디서부터가 초과 이윤일까?그렇다면 초과 이윤은 무엇일까. 사전적으로는 정상 수준을 넘어선 이윤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이윤이 정상 수준이고, 어디서부터가 초과 이윤인지 기준을 정하기란 매우 어렵다. 김영훈 장관은 “전통적인 문법을 뛰어넘는 이윤”이라고 표현했지만, ‘전통적인 문법’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초과 이윤이란 말은 ‘적정 이윤’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데, 적정 이윤이란 것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기준선을 정한다고 해도 문제가 남는다. 기업이 항상 이익을 내지는 않는다. 손실도 낸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적정 영업이익이 연 100조원인데, 작년에 50조원 적자를 내고 올해 150조원 흑자를 냈다고 하자. 이때 150조원에서 100조원을 뺀 50조원은 초과 이윤이라고 해야 할까, 작년의 손실을 메운 것이라고 해야 할까.

독점 기업의 이윤이나 지대를 초과 이윤으로 부르기도 한다. 지대란 공급이 제한된 생산 요소를 소유함으로써 얻는 이익을 말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반도체 기업의 이익을 독점 이익이나 지대라고 볼 수는 없다. ◇ 이윤이 사라진 세상은?반도체 기업들의 막대한 이익은 어디에 써야 할까.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려면 이윤의 거시경제적 기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윤에는 ‘신호 기능’이 있다. 반도체 기업들이 이익을 많이 내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반도체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즉, 반도체산업에 더 투자해야 한다는 신호다. 반도체 기업이 돈을 많이 벌었으니 그중 일부를 나눠 갖자는 주장은 이윤이 보내는 신호를 거꾸로 해석하는 것이다. 투자를 늘려야 하는데 줄이라고 하는 꼴이다.

이윤의 또 한 가지 역할은 혁신을 촉진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과 기업이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은 그 대가로 이윤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윤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과정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경제가 성장한다. 초과 이익 추구는 기업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초과 이윤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의 이익을 거둬간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신기술 투자와 신제품 개발에 나설 유인도 약해진다. 그런 사회에선 혁신도 성장도 사라진다.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