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낭만 희극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당혹감을 피하기 어렵다. 스웨덴 출신 안무가 알렉산더 에크만의 '한여름 밤의 꿈'은 요정과 연인들의 달콤한 소동극 대신, 스웨덴 전통 여름 축제 '미드소마(Midsommar)'의 원시적 에너지가 폭주하며 만들어내는 무의식의 세계를 선보인다.
11일부터 14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에서 독일 도르트문트 발레단이 선보인 국내 초연 무대다. 일부 공연은 LG전자의 VVIP 초청 연례 문화 행사인 '더 시그니처 갈라(The Signature Gala)'를 통해 단독 대관 형태로 소개됐다. 이번 무대는, 축제의 찬란한 표피를 벗겨내면 결국 이성이 마비된 무의식과 마주하게 된다는 안무가의 의도를 반영했다.
암전이 걷히면 무대 전체를 뒤덮은 황금빛 건초더미가 사방으로 흩날린다. 극장은 순식간에 대지로 변모한다. 짚더미를 손에 쥔 무용수들이 마른 풀 내음으로 관객의 감각을 깨운다. 무용수들은 괴성을 지르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등 무용극의 편견을 깬 연기를 펼친다. 무용수 시절 "왜 무용수들은 소리를 내면 안되냐"고 반문했던 에크만다운 연출이다.
도르트문트 발레단은 클래식 발레의 엄격한 신체 통제력을 뼈대로, 일사불란하게 무대를 부수며 묘한 시각적 쾌감을 안긴다. 안나 폰 하우스볼프의 서늘한 보컬이 더해지며 축제는 점차 집단적 광기로 물든다.
1막의 미학적 정점은 안무가가 계산한 시선의 역전에 있다. 축제의 에너지가 극에 달한 순간, 30여 명의 무용수가 무대 앞 열에 나란히 서서 객석을 집요하게 응시한다. 이 침묵의 시퀀스는 관찰의 주체와 객체를 뒤바꾸는 장치다. 무대 위 광란을 관조하던 객석의 안전한 방어벽은 무너진다. 1막 종료 직전 객석 통로까지 내려와 관객 코앞에서 말없이 응시하다 퇴장하는 두 무용수의 모습은, 인터미션이라는 물리적 시간 동안 관객이 안전한 현실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만드는 심리적 장치다.
1막 한가운데서 툭 떨어지던 쓸쓸한 영어 가사 '얼마나 많은 친구들을 잃었나(How many friends have I lost)'의 복선은, 2막에 이르러 거대한 만찬 테이블 위 초현실적인 장면으로 폭발한다. 하늘에서 추락하는 거대한 물고기, 천장에서 거꾸로 자라나듯 내려오는 나무들, 목 없는 슈트들의 기괴한 행진. 프레더릭 애슈턴이나 조지 발란신이 구축한 동명의 '한여름 밤의 꿈'을 완벽한 악몽으로 바꾼다. 인과관계가 깨진 서사, 일상을 비트는 미장센은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의 문법을 무대 위로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 보였다. 에크만은 완벽한 축제의 절정 끝에 찾아오는 환각을 스웨덴 특유의 뻔뻔하고 위트 있는 블랙코미디로 풀어낸다.
에크만의 안무 어휘는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압도적인 무대 스케일과 오브제의 물량공세가 무용수들의 순수 기량을 가린다는 평단의 지적은 이번에도 유효하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짜 목적은 정교한 무용 테크닉의 과시가 아닌, 관객의 뇌를 마비시키는 직관적인 감각 자극과 대담한 '체험' 자체다.
논리와 이성의 방어벽을 허물고 잠재의식의 바닥을 날것으로 대면하게 만드는 이 화려한 악몽은 비평적 이성마저 무력화한다. 에크만은 관객의 손에 명쾌한 해설서를 쥐여주지 않는다. 다만 이성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기묘한 해방감을 온몸으로 만끽하길 원했을 뿐이다. 공연은 19~20일 화성 예술의전당으로 이어진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