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세계는 지금 히틀러가 아른거리는 독일 신세

입력 2026-06-12 17:17

1920년대 말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은 무너지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가까스로 세워진 체제는 대공황의 충격에 속절없이 흔들렸다. 인플레이션과 실업, 정치 폭력, 극단주의가 사회를 파고들었다.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거리에서 세력을 키웠지만, 제도는 이를 제어하지 못했다. 1923년 히틀러는 쿠데타 시도인 ‘맥주 홀 폭동’을 일으켜 체포됐지만, 1년도 감옥에 머물지 않은 채 석방됐다. 혼란은 결국 1933년 히틀러의 집권으로 이어졌다.

미국 저널리스트 로버트 D. 카플란은 신간 <질서의 종말>에서 “전 세계가 이제 하나의 거대한 바이마르가 됐다”고 주장한다. 질서가 실종된 바이마르 공화국의 모습이 오늘날 세계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여러 부분처럼 우리는 기술적, 정치적 전환의 대단히 취약한 단계에 놓여 있다”고 강조한다.

그가 오늘날의 세계를 바이마르 공화국에 빗대는 근거는 상호 연결성이다. 바이마르 시대의 독일은 ‘엉성하게 결합한 국가’에 가까웠다. “하나의 정부라기보다는 지역 차이가 큰 데다 최근에야 통일된 역사적 배경 때문에 여전히 서로 경쟁하고 적대하는 여러 부분이 간신히 조합돼 있는 상황이었다”는 설명이다.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 발생한 지역적 위기가 느슨하게 결합한 국가의 위기로 쉽게 확산했다.

오늘날 세계도 이와 비슷하다. 느슨하게 연결된 국제 질서 속에서 한 국가의 위기가 공급망과 금융시장을 타고 다른 국가의 위기로 번지고 있다. 저자는 “한 국가의 위기가 도미노처럼 거의 세계의 보편 위기가 되는 방식으로 모든 국가가 연결돼 있다”며 “바이마르 현상이 전 지구로 확대된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질서가 자유보다 먼저 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질서가 없으면 자유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어서다. 저자는 냉전 이후 세계가 믿어온 ‘규칙 기반 질서’가 더 이상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다고 본다. 유엔과 G7, 국제 합의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강대국 간 패권 경쟁과 지역 분쟁을 제어할 실질적 힘이 약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그는 세계적 규칙보다 군사적 경쟁에서 비롯된 ‘지역적 균형’이 오늘날 국제정치를 설명하는 데 더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중 있게 설명한다. 러시아의 침공은 유럽 안보 질서뿐 아니라 에너지, 식량, 물가 문제까지 야기했다. 그는 이 전쟁을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반복될 수 있는 위기의 예고편으로 읽는다. 대만해협, 인도·파키스탄, 아프리카와 중앙아메리카의 불안정까지 세계는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의 맛보기에 불과하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미국이 이란을 침공하기 전 이 책을 썼다.

저자는 희생양을 찾는 ‘군중들의 폭동’이 위기를 증폭시킨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국제 질서의 쇠퇴와 결합할 때 위기는 더 커진다고 본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 영상은 사람들을 더 넓게 연결하지만, 동시에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패거리’를 만들어낸다. 저자는 디지털 영상의 시대가 아니었다면 트럼프 현상과 같은 정치적 열광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나타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군중은 쉽게 희생양을 찾는다. 저자는 위험성을 “다음으로 갈기갈기 찢을 사람이 누구인지 보여달라”는 식으로 요약한다. 문제는 이런 충동이 이데올로기와 결합할 때 폭력성이 커진다는 데 있다. 저자는 누군가를 ‘역사의 잘못된 편’에 있다고 단정하는 순간 공격은 정의의 이름을 얻게 되는데, 역사의 방향을 확실히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최근 현상을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 뒤에 벌어진 ‘홀로코스트’에 빗대는 데까지 나아간다. 그는 “히틀러가 집권하는 데 일조한 독일의 인플레이션은 경제사에서 가장 극심한 인플레이션 중 하나”라며 “이때 군중이 복수를 위해 선택한 희생자는 유대인이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상당히 비관적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비유를 통해 위기의 깊이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바이마르에는 희망이 넘쳐났지만, 질서는 충분하지 못했다. 지금 우리 세계의 궁극적 과제는 바이마르의 운명을 피하는 것이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