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뜨자마자 뭘 먹을지, 전날 미리 계획을 세워두고 잠자리에 드는 나 같은 아침밥 애호가에게 튀르키예만큼 잘 맞는 여행지도 또 없다. 이른 아침부터 진수성찬이 한 상 가득 나오니 말이다. 예고 없이 튀르키예 아침상을 받으면 누구든 “이야, 이게 다 뭐야?”라며 깜짝 놀랄 것이다. 얼핏 보면 과한가 싶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건강하고 소박한 조합인 걸 금세 알게 된다. 조리법이랄 것도 딱히 없는 게 재료를 썰어서 가지런히 담아놓은 게 전부다. 싱싱한 오이와 토마토, 삶은 달걀, 치즈와 올리브, 꿀과 버터, 카이막, 에크멕 빵. 그리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홍차까지 모두 국내에서 생산한 것들이다. 하나같이 질 좋고 맛있다. 튀르키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식량 자급자족이 가능한 나라이고 여러 나라에 수출도 한다.
튀르키예의 전통적인 아침 식사를 카흐발트(kahvaltı)라고 하는데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뿐 아니라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하는 하나의 의식이라고 한다. 카흐발트가 어찌나 인상 깊던지 20여 년 전 처음 튀르키예를 여행하면서 맛있는 걸 그렇게나 실컷 먹어놓고도 돌아와선 주위 사람들을 붙잡고 카흐발트 타령만 했다. 나 원 참, 아무래도 제대로 홀렸나 보다. 그때 이후 튀르키예를 거듭 찾게 된 걸 보니.
이른 아침,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보면 버스나 택시 기사님들이 주차장 바닥에 신문지를 두어 장 깔아놓고 오이와 토마토와 치즈를 칼로 쓱쓱 썰어 에크멕과 함께 우물우물 식사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주말의 공원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아침 식사 거리를 바리바리 챙겨와 느긋하게 즐기는 사람들. 찻주전자와 찻잔까지 챙겨올 정도로 본격적이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곧바로 손짓하며 먹고 가라고 권하니, 참 친절하고 감사하다. 카흐발트란 이렇게 일상에 착 달라붙어 있는 매일의 아침 식사다. 특별하지도 않고 유난 떨 것도 없는.
그런데 동시에 튀르키예를 대표하는 관광 문화상품이기도 하다. 온종일 카흐발트 메뉴를 맛볼 수 있는 아침 식사 전문점도 많고, 베이커리 카페에서도 SNS에 올리기 좋게 예쁘게 차려놓은 카흐발트를 판다. 심지어 아예 카흐발트로 이름난 골목도 여러 곳 있을 정도다. 특히 이스탄불의 첼레비오을루(Celebi O?lu) 골목이 유명한데, 좁고 긴 골목 안에 아침 식사 전문 식당만 서른 곳 가량 다닥다닥 모여있다.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자연스레 메뉴와 가격, 맛이 두루 평준화되어 어느 식당을 고르든 무난하게 맛있다. 이런 곳에서 파는 아침 식사를 콕 집어 세르프메 카흐발트(serpme kahvaltı)라고 한다. 세르프메는 흩뿌린다는 의미로 다양한 음식을 한 상 가득 쫙 펼쳐놓는 모습을 표현한다고 한다.
4~5년에 한 번 꼴로 튀르키예를 방문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저런 변화를 느끼는 중이다. 잠시 머물다 가는 처지에서 속속들이 파악하고 이해하긴 어렵겠지만, 설명하기 힘든 미묘한 분위기가 있다. 카흐발트 골목의 풍경 역시 꽤 달라졌다. 튀르키예 사람들로 북적이던 테이블에 이젠 나 같은 외국인 여행자만 드문드문 앉아 있으니 말이다. 주중은 물론이고 주말에도 조용한 모습이 안타깝다. 불안정하게 널뛰는 환율과 물가로, 즐거워야 할 아침 식사가 갑작스레 사치품으로 돌변한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상대적으로 뵤렉 가게가 전보다 훨씬 붐비는 듯하다. 뵤렉(borek)은 버터 향기를 물씬 풍기는 큼직하고 바삭한 황금색 페이스트리다. 아주 오래전부터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온 간단한 아침 메뉴다. 여행 일정이 짧을 땐 아쉬운 마음에 아침마다 카흐발트 한상 차림을 찾지만 여유 있게 머물 땐 나 역시 거의 매일 뵤렉을 사 먹곤 한다. 맛도 좋고 뭐니 뭐니 해도 싸다. 구글 지도에서 borek을 검색하면 어지간한 빵집이나 카페 못지않게 뵤렉 가게가 잔뜩 나올 것이다. 대부분 아침 여섯 시 전에 문을 열고 오후 서너 시쯤 슬슬 정리한다. 동네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한두 마디라도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면 이른 시간에 뵤렉 가게에 가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왕이면 가게 앞 야외 자리가 좋다.
엉덩이만 쏙 들어갈 만한 낮은 나무 의자에 앉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우선 뜨거운 홍차부터 내어준다. 오늘은 어떤 걸 먹어볼까? 뵤렉은 커다란 오븐 팬에 버터를 듬뿍 칠한 다음 종이보다 얇은 유프카(yufka) 반죽을 깔고 여러 가지 소를 올린 후 다시 반죽을 까는 식으로 켜켜이 쌓아 올린 후 구워낸다. 주문하면 약 250g씩 칼로 쓱쓱 잘라서 접시에 담아주는데 이만큼을 1포시온(porsiyon)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1인분인 셈으로 튀르키예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자주 쓰는 단위다.(음식마다 1포시온의 양이 다르다)
뵤렉 중 가장 기본은 희고 푸슬푸슬한 새큼 짭짤 치즈를 흩뿌려 넣고 구운 페이니르(peynir) 뵤렉이다. 그러잖아도 버터를 듬뿍 넣었는데 치즈까지 더했으니 맛이야 뭐 말할 필요도 없다. 역시 칼로리는 맛의 척도인가 보다. 데친 시금치 뵤렉과 삶은 감자 뵤렉, 다진 쇠고기 뵤렉도 두루두루 맛있다. 희한하게 하나같이 한국인의 입에 잘 맞을 법하다. 특히 쇠고기와 양파를 다져서 후추, 파프리카 가루 등으로 양념한 걸 넣어 만드는 크이말르(Kıymalı) 뵤렉은 한입 먹자마자 군만두 생각이 난다. 초간장에 고춧가루 톡톡 뿌려서 찍어 먹으면 딱 좋겠다. 튀르키예 음식 추천 요청을 받으면 크이말르 뵤렉은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따로 있다. 수 뵤렉. 수(su)는 물을 뜻한다. 넓적한 뵤렉 반죽을 한번 데친 다음 치즈를 솔솔 뿌려가며 주름잡아 쌓은 후 오븐에서 겉면이 바삭해지도록 구운 거다. 얼핏 보면 다른 뵤렉과 별다를 게 없지만, 그 속은 흐들흐들 부드럽고 촉촉해 마치 얇게 뜬 수제비 같다. 이게 별미다. 겉은 바삭한데 속은 촉촉하지, 빵 부분이 슴슴한가 싶은데 치즈가 새큼 짭짤하게 씹히지, 여러 감각이 입안에서 동시에 터진다. 단 한 접시의 뵤렉을 먹는다면 나라면 단연 수 뵤렉이다.
뵤렉 한 접시와 홍차 한두 잔, 이 가벼운 아침 식사만큼은 여전히 물가 대비 아주 저렴하다. 먹고 가는 사람 못지않게 포장 손님도 많다. 1~2킬로그램씩 든든하게 싸 들고 집이나 직장으로 향하는 걸 보면 모두 뵤렉을 사랑하는 모양이다. 발칸반도와 캅카스 등 튀르키예 주변 지역을 두루 여행하다 보면 뵤렉의 형제들을 금세 찾을 수 있다. 오스만 제국 때 먹기 시작한 게 어느새 곳곳으로 퍼진 것이다. 모양과 맛은 조금씩 달라졌어도 바삭한 페이스트리 반죽에 짭짤한 소를 넣어 굽거나 튀겨 만든다는 건 같다. 이름도 살짝만 변형된 게 흥미롭다. 그리스에선 부레키(μπουρ?κι), 불가리아는 뷰레크(бюрек), 튀니지는 브리크(????), 크로아티아에선 부레크(burek)라고 부르니 말이다.
아침을 먹고 있으면 고양이가 다가와 애교를 부린다. 한 마리, 아니 두 마리다. 어라, 주위를 둘러보니 네댓 마리는 되어 보인다. 먹을 걸 달라는 건가 싶지만 막상 음식을 주면 거들떠보지 않는다. 이미 충분히 밥을 먹은 모양이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고양이를 무척 사랑해서 어디에나 사료 그릇과 물그릇이 놓여 있다. 내가 머무는 숙소 건물 입구에도 고양이 사료 봉지가 있어 누구나 자유롭게 나눠줄 수 있다. 그러니 이 고양이들이 다가오는 건 정말로 내가 궁금해서인 거다. 고양이 핑계로 주위 테이블 손님들과 한 번 더 웃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튀르키예 여행, 오늘도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