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벨리우스가 퍼스트 트럼펫을 좋아한 것 같아요. 트럼펫 선생님이 사실상 주인공이라 다른 악기가 트럼펫 소리보다 커지면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금관 선생님은 날카롭지 않게, 멀리서 들리는 오르간 소리처럼 할게요."
지난 9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아트센터에서 진행된 리허설 현장. 50여명의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 2악장 연주를 마치자 지휘봉을 내려놓은 윤한결(32)이 악기별 피드백을 조목조목 짚었다.
대구 사투리가 묻어나는 윤한결의 말은 딱딱하기보다 완곡했고, 비연주자가 이해하기에도 쉬운 명료한 언어였다. 그는 연주가 마음에 들 때면 카리스마 넘치던 눈빛을 풀고 순박한 미소와 함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세계가 탐내는 젊은 지휘자
이날 숨 가쁜 첫 번째 리허설이 끝난 후 대기실에 있는 그와 마주 앉았다. 독일 뮌헨에 살고 있는 윤한결은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활발히 활동하는 지휘자다. 2023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카라얀 젊은 지휘자 상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이후 세계 유수의 악단에서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도이체 심포니 오케스트라 베를린, 뮌헨 필하모닉,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 LA필하모닉 등 2028년까지 세계 곳곳의 포디엄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짬을 내 한국에 온 윤한결은 오는 12~13일 이틀간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춘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데니스 코츠킨이 협연하는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1번과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을 경기아트센터(12일)와 서울 예술의전당(13일) 무대에 올린다.
대구 소년의 과감한 결단
윤한결이 처음 음악을 접한 건 만 네 살 때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서부터다. 어린아이가 악보를 따라 치기보다 혼자 멜로디를 지어내는 걸 본 학원 선생님의 권유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작곡을 배웠다. 남다른 재능을 보인 그는 본가인 대구에서 홀로 상경해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다녔다.
하지만 대학 입시 위주의 한국식 교육은 음악을 향한 그의 갈증을 채워주지 못했다. "제가 생각했던 작곡 공부가 아니라 수능 준비 위주였어요. 특정 대학교 작곡과에 가려면 수학 1등급을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등학교 1학기를 다닌 뒤 자퇴를 결정했어요."
작곡도 만능인 지휘자
2011년 독일 유학길에 오른 그는 작곡가로서의 길을 차근차근 걸어 나갔다. 한국과 달리 독일은 "쇤베르크나 리게티마저 옛날 작곡가로 치부할 정도로 극도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분위기"였다. 지휘로 노선을 튼 건 24살이던 2018년부터다. "작곡 대회에서 상도 받아봤지만, 더 나갈 대회도 없었고 동기 부여도 사라진 느낌이었어요. (뮌헨 음대에서) 작곡 외에 피아노와 지휘도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휘로 전향했어요."
윤한결을 지휘자로 이름을 알리게 한 카라얀 젊은 지휘자 상 콩쿠르는 우승 특전으로 그에게 특별한 무대를 제공했다. 2024년 세계 최고 권위의 클래식 축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빈 방송교향악단을 이끌 수 있는 기회였다. 뿐만 아니라 윤한결은 자신이 새로 작곡한 음악 '그리움'을 이 무대에서 직접 지휘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윤한결은 벅찬 감정에 취하는 대신 특유의 담담함을 유지했다. "제가 작곡한 곡이라고 지휘할 때 더 신경쓰진 않았던 것 같아요. 저한테 소중한 곡이지만 대작들을 잘 지휘하는 게 더 중요했거든요."
확신의 지휘자 상
좋은 지휘자에게는 다양한 자질이 요구된다. 음악적 감각은 물론 단원들의 마음을 읽고 조율하는 리더십과 카리스마, 그리고 순발력까지.
그중에서도 윤한결은 작곡가 출신답게 곡을 구조적으로 파악하는 데 탁월한 강점이 있다. 그는 "예전부터 초견(처음 보는 악보를 읽어내는 능력)이 빠르고, 곡의 흐름을 기억하는 것도 잘했던 것 같다"고 덤덤히 말했다.
'자신의 진짜 강점이 뭐냐'는 질문에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음, 확실한 건 어디서나 기죽거나 위축되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오만하거나 자신감이 넘쳐서라기보다 그냥 그런 DNA나 세포가 빠져 있어요."(웃음)
윤한결 특유의 듬직한 카리스마는 타고난 쪽에 가깝다. 그는 스스로 'I(내향형)'이라 말하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예고 자퇴 직전까지 한 학기도 빠짐없이 반장을 도맡았다. "제가 손들고 나간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어릴 땐 키가 크다는 이유로, 예원학교에선 사투리가 웃기다고 친구들이 뽑아줬어요. 그다음엔 지난번에 했다고 또 시키고 그랬죠. 앞에서 나서기보다는 친구들이 싸울 때 말리는 스타일이었어요"
그는 롤 모델로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 구스타프 말러를 꼽았다. "작곡 방식이나 지휘 방식을 닮고 싶은 건 아니지만 정말 대단한 분들이잖아요. 지휘에서 정점을 찍고, 짬 내서 쓴 작품들이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지휘에 집중하고 있지만, 언젠가 자신만의 음악을 짓겠다는 그의 의지가 읽혔다.
그렇지만 목표는 거창하지 않다. 유명 오케스트라와 무대에 서겠다는 욕심도, 자신이 쓴 곡을 화려한 무대 위에서 직접 지휘하고 싶다는 바람도 크지 않다.
"한 곳에서 오래도록 사랑받는 지휘자가 되고 싶어요. 유럽에는 워낙 많은 악단이 곳곳에 있어서 계속해서 거처를 옮겨 다녀야 하거든요. 이제는 저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은 지역에 자리를 잡고 싶어요."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