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회장 인선 관련 취재를 하지 말라는 얘기인가요?”
국내 최대 금융그룹인 KB금융지주가 지난 6월 2일 차기 회장 선임 절차 시작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이후 ‘세부 일정까지 모두 공개해 취재할 게 없다’는 기자들의 푸념이 잇따랐다. 금융지주 회장 임기(3년)가 끝날 때마다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는 금융권 기자들의 취재 경쟁이 가장 치열하게 펼쳐지는 이른바 ‘큰 판’으로 꼽힌다. 금융지주 회장 후보군을 골라내는 롱리스트나 숏리스트 등 단순한 일정마저 ‘단독’을 붙인 기사들이 쏟아지곤 했다.
하지만 이번 KB금융 차기 회장 선임 절차는 이전과는 사뭇 다를 전망이다. KB금융 회추위가 1, 2차 숏리스트 확정부터 최종 후보자 1인 확정까지 주요 일정을 외부에 투명하게 공개하면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 일부 금융지주는 명절이 낀 대체공휴일에 ‘깜깜이’ 회추위를 열고 차기 회장을 선출했다”며 “KB금융이 언론을 통해 외부에 일정을 공개한 것 자체가 투명하고 공정한 선임 절차의 첫 단추”라고 평가했다.
○CEO ‘참호 구축’ 탈피한 KB금융
KB금융 회추위는 양종희 회장의 임기 만료(2026년 11월 20일) 두 달 전인 오는 9월 11일 차기 회장 최종 후보를 확정하기로 했다. 회추위는 이를 위해 ‘회장 후보 추천 절차 세부 준칙’을 결의하고 기존 잠재 후보군(롱리스트) 20명(내·외부 각 10명)을 내부 6명, 외부 6명 등 총 12명으로 압축했다고 발표했다.
KB금융 회추위는 향후 일정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회추위는 오는 7월 3일 12명의 후보를 6명(1차 숏리스트)으로 압축할 방침이다. 이어 8월 27일에는 6명의 후보를 대상으로 1차 인터뷰와 심사를 진행해 3명(2차 숏리스트)로 좁힌다. 이후 9월 11일 2차 인터뷰와 심층 평가 이후 투표를 통해 최종 후보 1인을 확정한다. 최종 후보가 관련 법령에 따른 자격 검증을 통과하면 10월 2일 회추위와 이사회 추천을 거쳐 11월 중 임시주주총회에서 최종 후보를 차기 KB금융 회장으로 선임하는 일정이다.
KB금융의 이번 차기 회장 인선은 주주를 비롯한 시장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진행되는 점이 우선 눈에 띈다. 금융권에서는 ‘주인 없는 회사’(소유 분산 기업)인 금융지주 회장이 사외이사들과 이사회에 자신만의 참호를 구축하고 ‘셀프 연임’을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KB금융은 달랐다. 조화준 회추위원장을 비롯한 최재홍·차은영·이명활·김성용·김선엽·서정호 이사 등 사외이사 7인으로 꾸려진 KB금융 회추위는 차기 회장 선임 공식 절차 개시에 앞서 간담회를 열고 승계 절차 관련 사전논의를 진행했다. 이어 주주들이 기대하는 차기 KB금융 회장의 자질과 역량에 대한 목소리도 들었다. 회추위가 주주들의 눈높이에 맞춘 인재를 발탁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조 회추위원장은 “금융당국 주도로 진행 중인 금융권 지배구조 선진화 차원에서 더욱 투명하고 공정하게 경영승계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며 “주주가치 제고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최고의 적임자를 선정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평가기간 늘리고…공정한 기회도
KB금융이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시작한 시점도 이전보다 빨라졌다. 양종희 회장이 선임된 2023년에는 본격적인 회장 선임 절차가 7월 중순께 시작됐다. 이번에는 임기 만료 5개월 전인 6월 초부터 회추위가 잠재 후보군을 압축했다. 후보 검증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 경영 역량과 리더십, 비전 등에 대한 면밀한 평가가 가능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승계 절차 개시(6월)부터 최종 후보 선정(9월)까지 전체 기간도 3개월로 늘어났다. 특히 1차 숏리스트(7월 3일) 선정부터 최종 후보 선정(9월 11일)까지의 검증기간을 2개월로 확대했다. 2023년 KB금융 회장 선출 당시엔 이 기간이 1개월이었고 그 이전인 2020년에는 19일이었다.
KB금융 회추위는 안정적인 경영 승계를 위해 회장 잠재 후보군(롱리스트)를 매년 반기 단위로 관리해오고 있다. CEO 내부 후보자군 육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경영 현안 주제 발표 등을 통해 새로운 얼굴도 발굴한다. 회장 임기 만료 시점에 반짝 회추위를 운영하는 방식이 아닌 상시 후보군을 관리하고 충분한 검증 과정을 거쳐 차기 CEO를 선출해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선진화 방향과도 일맥상통한다.
KB금융은 외부 후보자에게 불리함이 없도록 공정한 경쟁을 위해 마련한 절차도 과거에 비해 한층 강화했다. 회사 현황과 사업 구조, 조직 문화 등을 이미 파악하고 있는 내부 후보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금융지주 회장 선임 절차에서 새로운 시도다. KB금융 회추위는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외부 후보를 위해 평판 조회 체계를 세밀화하고 내부 경영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기로 했다. 특히 외부 후보자에 대해 인터뷰 기회를 두 차례로 늘리고 인터뷰 시간도 내부 후보자보다 더 준다. 1차 숏리스트 선정 이후 실제 면접까지 2개월간의 준비기간을 제공해 외부 후보자가 경쟁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했다.
○양종희 회장 실적·밸류업 두각
금융권에서는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환원 성과 등을 감안할 때 양종희 회장(사진)의 연임에 무게를 싣고 있다. KB금융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5조8430억원의 순이익을 달성했고 올해 1분기에도 1조8924억원의 분기 최대 순이익을 냈다. KB금융은 지난 4월 발행주식 총수의 약 3.8%(1426만 주)에 달하는 기존 보유 자사주 전량을 소각하기로 했다. 약 2조3000억원 규모로 단일 소각으로는 업계 역대 최대 액수다. 추가로 매입 및 소각하기로 한 6000억원까지 더하면 자사주 소각 규모만 2조9000억원에 달한다. 적극적인 주주환원 덕분에 KB금융 주가는 양 회장 취임 이전보다 200% 가까이 껑충 뛰었다. 80%에 가까운 외국인 주주들이 양 회장 체제에 만족하는 이유로 꼽힌다.
양 회장의 뒤를 이어선 KB금융 내 부문장을 맡고 있는 이창권 미래전략부문장(전 KB국민카드 사장)과 이재근 글로벌·WM·SME부문장(전 KB국민은행장), 김성현 CIB마켓부문장(전 KB증권 사장)이 유력 후보군이다. 3인 부문장 모두 KB금융의 핵심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는 점에서 경영 능력은 검증됐다는 평가다.
KB금융의 핵심 계열사인 KB국민은행의 이환주 행장도 숏리스트 후보로 거론된다. 정상혁 신한은행장도 지난해 11월 신한금융지주 차기 회장 숏리스트에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다만 이 행장의 첫 임기가 오는 11월 말 만료된다는 점에서 은행장 연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중론이다.
KB금융이 투명하고 공정한 경영 승계 절차를 제시했다는 점에서는 금융권 안팎에서도 이견이 없다. 중요한 것은 실천 여부다. 약속한 대로 KB금융이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금융지주는 물론 민영화된 공기업 등 소유 분산 기업 지배구조 선진화에도 획을 그을 수 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