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 "선관위 신뢰 잃으면 존재 의미 없다"

입력 2026-06-07 20:24
이재명 대통령이 6·3 지방선거에서 벌어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국민 주권의 근간을 훼손한 중대한 사안’으로 규정하고 합동수사본부 구성을 지시했다.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일대 등 곳곳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시민들의 시위가 이어지자 국민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발 빠른 진상 규명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철저한 진상 조사 ‘이구동성’이 대통령은 7일 X(옛 트위터)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방선거 과정에서 국민의 참정권 행사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다”며 “국민의 참정권은 어떠한 이유로도 제한되거나 침해돼서는 안 되는 헌법적 권리이며 이번 사태는 국민주권의 근간을 훼손한 중대한 사안”이라고 질타했다.

이 대통령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정부를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국민의 신뢰를 잃은 독립기관은 존재의 의미가 없다”고도 했다. 이어 “정부는 사안의 엄중함을 고려해 행정부 차원에서 가능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며 “검찰과 경찰이 참여하는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고, 사건의 전모를 철저히 규명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이날 ‘투표용지 부족 관련 대학생과의 간담회’를 열어 철저한 진상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을 약속했다. 김 총리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선관위의 일정 이상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은 다 물러나야 할 사안”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총리는 “선관위가 투표와 선거 관리에 대한 권한을 독점적으로 갖고 있고 감사원을 포함해 외부에서 통제하거나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어 큰 문제”라며 “제도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선관위에 대한 고강도 개혁 속도전을 예고했다. 한병도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간담회에서 “국정조사요구서를 8일 국회에 제출하고, 국정조사특별위원회 구성 등을 위한 국민의힘과의 협상에도 바로 착수하고 조속한 본회의 개최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원내에는 선거제도 개혁 태스크포스(TF)를 설치해 선관위 관련 법률을 들여다보고 필요하면 개헌도 검토하는 등 제도 개선안을 마련할 예정이라며 특검 도입도 고려할 것이라고 했다. ◇재선거 주장도 잇따라정부·여당의 진상 조사와 재발방지 약속에도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재선거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일부 의원이 이에 동조했으나, 정부와 정치권에선 반대하는 의견이 상당하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재선거와 사전투표 폐지 등을 주장하며 이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박선원·최민희 민주당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투표용지 문제가 발생한 지역은 재선거를 시행하자고 각각 의견을 냈다.

그러나 김 총리는 “(사실관계를) 확인은 하더라도 재선거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토론해볼 사안이 아닌가 싶다”며 “투표용지 문제와 상관없이 당선이 결정된 곳도 있는데 이 경우 재선거가 타당한지, 또 당선자 측이 재선거를 받아들일지는 별개 문제”라고 했다.

상당수 여야 의원도 선관위 문제를 정쟁화하는 것에 반대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SNS에 “정쟁적 소모전 말고 즉각 진상 규명과 처벌을 통해 국회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착수하자”고 썼다. 강준현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국민의힘은 오로지 ‘기승전 대통령 탓’만 하고 있어 문제의 본질을 부풀리고 현실을 보지 않는 막무가내”라며 “(장 대표의) 정치적 입지가 사면초가에 몰리다 보니 과격한 말을 쓰는 것 같다”고 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선관위 문제가 정쟁으로 비화할 경우 장 대표 등과 함께 ‘부정선거론’에 휩쓸릴 수 있다는 경계심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6일 국민의힘 의원 단체 텔레그램 방에서 김미애 의원은 장 대표 등의 집회 참여에 대해 “지도부가 왜 나서나. 선동, 정쟁 프레임에 갇힌다”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비폭력 저항운동이 폄훼당하지 않도록 신중하길 요청한다”고 했다.

한편 한동훈 무소속 의원은 이날 감사원이 중앙선관위 외부감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한재영/이현일/이슬기 기자 j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