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의 산과 음악이 만난 '무해한 위로'...별빛이 내리는 계촌클래식축제

입력 2026-06-07 14:54
수정 2026-06-07 15:55
지난 5~7일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리에서 열린 '계촌클래식축제'는 초여름이 건네는 작은 선물이었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한낮 마을 장터에선 메밀전 수수부꾸미 등 향토 음식을 즐기고, 저녁에는 '한국의 알프스'로 불리는 평창의 산기슭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클래식에 빠져드는 시간. 음악과 자연이 선사하는 무해한 위로를 찾아 올해도 1만명 넘는 관객이 계촌을 방문했다.



○사흘간의 지상낙원
계촌클래식축제는 올해로 12회를 맞은 국내 대표 야외 클래식 축제다. 계촌초 폐교 위기를 막기 위해 창단된 계촌별빛오케스트라에 2015년부터 현대차 정몽구 재단과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전폭적인 지원이 더해지며 지금의 축제로 거듭났다. 그동안 피아니스트 백건우, 조성진, 임윤찬 등 세계적인 클래식 스타들이 이 축제를 거쳐갔다.

울창한 진녹색 숲을 배경으로 세워진 야외 무대. 오프닝을 맡은 계촌별빛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제 몸집만 한 첼로를 품에 안고 쪼르르 무대에 오르자 관객들은 엄마 미소로 이들을 맞이했다. 바이올린을 켜며 발끝으로 박자를 타는 진지한 표정의 아이부터 날아든 벌레에 놀라 잠시 연주를 멈춘 아이까지 무대 위에는 사랑스러운 풍경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뮤지컬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주제가,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의 OST '골든' 등 귀에 익숙한 음악을 클래식 버전으로 선보이며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진 프로 연주자들의 무대는 주홍빛 노을과 함께 깊어갔다. 피아니스트 김송현이 나직한 왼손 반주를 시작으로 스크랴빈의 5개 전주곡(Op.16) 중 1번을 연주하자 무대 위엔 어둠이 스며들고, 그 위로 얹어진 오른손은 투명하고 아련한 슬픔을 자아냈다. 난곡으로 꼽히는 스크랴빈의 환상곡 나단조에선 불규칙적인 음표들을 유성우처럼 쏟아내며 격정적인 에너지를 뿜었다.



올해부터 계촌클래식축제 예술감독을 맡은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의 무대는 열정 그 자체였다. 김송현과 함께 호흡을 맞춘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7번은 안정적이면서 편안하게 뻗어나가는 이지혜의 고음 연주가 돋보였다. 1악장이 끝나자마자 객석에서 참지 못한 "브라보"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야외 무대의 급작스러운 온도 변화로 연주 도중 바이올린 조율이 풀리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지만, 이지혜는 노련한 대처로 열정적인 연주를 이어갔다. 싸늘한 계촌의 공기는 그의 풍성한 바이올린 선율을 입고 객석의 체감 온도를 순식간에 높여놨다.

바이올리니스트 김현서가 합류한 이어진 무대에선 사라사테의 '나바라'를 선보였다. 두 바이올리니스트는 숲 속의 두 마리 새가 지저귀듯 빠르고 현란한 연주로 귀를 간지럽혔고, 김송현 역시 경쾌하게 건반을 튕기며 멜로디를 뒷받침했다.



○드론쇼 등 볼거리도 풍성
주말인 6일 계촌리는 가족 단위 관객들로 더욱 북적였다. 무대를 중심으로 펼친 돗자리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지휘자 아드리앙 페뤼숑이 이끄는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이날 현충일을 맞아 예정에 없던 '그리운 금강산'을 연주하며 축제 이튿날을 경건한 분위기로 열었다.

이날 협연자로 무대에 오른 첼리스트 한재민은 생상스의 첼로 협주곡 1번으로 첼로의 우아한 기교를 마음껏 뽐냈다. 애절한 선율을 연주할 땐 손끝으로 현을 강하게 누르며 허공으로 시선을 던지는 몸짓이 몰입도를 높였다.



이어 한재민은 오케스트라 단원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을 함께 연주했다. 드보르자크가 고향 체코의 시골 마을에 머물며 자연 속에서 느낀 행복을 담아낸 곡으로 이날 야외 무대의 정취와 완벽히 어우러졌다. 특히 서정적인 바이올린 선율로 시작하는 보헤미안풍의 3악장은 야간 조명 아래 풀벌레들마저 군무를 추는 듯한 환상감을 불러일으켰다.

앙코르 곡으로는 앞서 연주된 로시니의 '빌헬름 텔' 서곡이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지휘자는 객석의 박수 크기까지 세밀하게 조율하며 축제의 피날레를 재치있게 이끌었다. 공연이 막을 내린 후, 관객들은 밤하늘을 수놓은 드론쇼를 감상하느라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내년의 재회를 기약하게 만드는 낭만의 밤이었다.



계촌=허세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