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부터 4일까지 열린 엔비디아 GTC 타이베이는 AI Capex의 성격 변화를 확인한 이벤트다. 젠슨 황의 키노트가 던진 메시지는 명확했다. AI 경쟁의 핵심은 GPU 확보에서 효율적 AI 팩토리 구축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AI 팩토리의 경제성은 같은 전력으로 얼마나 많은 토큰을 생산하는가에 달려 있다. 전력당 토큰 처리량이 높을수록 더 많은 AI 작업을 수행할 수 있고 수익성도 개선된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플랫폼 베라 루빈(Vera Rubin)은 이 변화를 상징한다. 베라 루빈은 단일 GPU가 아니다. 루빈 GPU, 베라 CPU, 네트워크, DPU, 전력·냉각을 결합한 랙스케일 AI 인프라 플랫폼이다. 핵심은 에이전틱 AI 작업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가다. 엔비디아는 베라 루빈이 그레이스 블랙웰(Grace Blackwell) 대비 에이전틱 AI 작업처리량을 10배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공급망 규모도 달라진다. 젠슨 황은 베라 루빈을 위해 구축한 공급망이 그레이스 블랙웰의 2배 규모이며 이 생산능력 전부가 수요 대응에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블랙웰이 기존 AI Capex 사이클을 대표했다면 베라 루빈은 에이전틱 AI 시대의 차기 투자 사이클을 의미한다.
주식시장 관점에서 이번 이벤트의 본질은 대만 공급망의 지위 격상이다. 베라 루빈 램프업 단계에는 전 세계 30개국 350여 개 공장이 동원된다. 이 중 대만에서만 150개 공급망 파트너가 참여한다. 대만은 단순 서버 조립기지가 아니다.
파운드리, 패키징, 테스트, 서버 랙, 전력, 냉각, 네트워크를 연결해 AI 팩토리의 물리적 병목을 해소하는 공급망이다. 대만에서는 칩이 생산되고, 패키징이 이뤄지며, 시스템이 조립되고, AI 슈퍼컴퓨터가 완성된다. 젠슨 황이 대만을 AI 혁명의 중심지로 지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베라 루빈 이후 대만 공급망 역할론은 반도체 생산기지에서 AI 팩토리 시스템으로 확장될 전망이다.
대만은 미국 빅테크 AI Capex가 수출과 기업이익으로 가장 빠르게 연결되는 EM 시장이다. 미국의 AI 데이터센터 투자는 대만의 반도체, AI 서버, 네트워크 장비 수요로 이어진다. 수출 호조는 GDP 성장률과 기업이익 전망을 높인다. AI 설비투자 사이클이 매크로와 주식시장으로 직접 연결되는 구조다.
EM 투자전략에서 대만의 역할론에 주목해야 한다. 글로벌 주식시장을 주도하는 역학은 단연 AI Capex다. 이 과정에서 수혜는 서비스 기업보다 물리적 인프라를 공급하는 국가에 먼저 집중되고 있다. 이익 모멘텀과 주가 성과가 이를 증명한다.
EM 내 가장 강한 이익 베타는 단연 한국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은 AI 메모리 사이클의 최대 수혜국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HBM과 고부가 DRAM 시장은 공정 난이도가 매우 높고 공급도 제약적이다. 공급 탄력성이 낮은 산업에서 수요가 급증하면 이익 레버리지는 커진다. 코스피의 12MF EPS 성장률(+84.1%)과 3개월 변화율(+32.4%) 공히 압도적인 이유다.
대만은 성격이 다르다. 한국이 AI 사이클의 메모리 베타라면 대만은 AI 인프라 베타다. 파운드리, 후공정, 기판, 서버 조립, 네트워크, 전력, 냉각까지 포괄한다. 메모리만큼 이익 탄력은 크지 않다. 대신 공급망 범위가 넓고 장기 성장 가시성도 높다. AI Capex가 랙스케일 인프라로 확장될수록 대만의 역할은 더 커진다.
벤치마크 관점에서도 대만의 의미는 크다. 5월 말 기준 MSCI EM 내 대만 비중은 26.4%로 중국(20.4%)을 넘어 최대 비중을 차지한다. EM 성과를 결정하는 변수는 더 이상 구경제 중심의 소비·금융·부동산 사이클이 아니다. 대만과 한국의 AI 하드웨어 공급망이 EM 수익률을 결정하는 구간으로 이동했다.
MSCI Taiwan은 여전히 TSMC 단일 시장 성격이 강하다. 2026년 5월 말 기준 TSMC 비중은 54.8%다. IT 비중은 88.9%, 상위 10개 종목 비중은 77.5%다. 집중도는 높지만 리스크로만 볼 필요는 없다. AI 인프라 사이클에 가장 순수하게 노출된 지수라는 의미도 함께 갖는다.
중요한 변화는 비(非)TSMC 기업의 재평가 가능성이다. 미디어텍(MediaTek)은 모바일·엣지 AI 칩 설계, Delta Electronics는 데이터센터 전력·냉각, 홍하이(Hon Hai)는 AI 서버 조립, ASE는 반도체 후공정, Elite Material과 Unimicron은 CCL·기판, Accton은 네트워크 장비를 담당한다. 이들은 AI 팩토리의 주변부가 아니다. AI 연산 성능이 높아질수록 전력, 냉각, 기판, 네트워크가 새로운 병목으로 부상한다. 베라 루빈 플랫폼의 랙스케일 확장은 대만 공급망의 밸류에이션 재평가를 정당화한다.
투자전략의 결론은 명확하다. EM 내 AI Capex 수혜는 동아시아에 집중된다. 한국은 이익 탄력이 가장 강한 공격적 베타다. 대만은 벤치마크 영향력이 가장 큰 AI 인프라 코어다. AI 사이클에 베팅하는 EM 전략은 한국을 최우선 비중 확대 대상으로 두고, 대만을 구조적 보유 대상으로 함께 가져가는 접근이 적절하다. 한국은 이익 상향 속도, 대만은 이익 안정성과 공급망 확산이 차별화 포인트다.
신승웅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