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싱가포르 슬링'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

입력 2026-06-03 18:48
수정 2026-06-04 00:01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칵테일 ‘싱가포르 슬링’은 1915년 래플스 호텔에서 탄생했다.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하면서 싱가포르는 해적 근거지에서 유럽·아시아를 잇는 최단 항로의 요충지로 탈바꿈했다. 유럽인의 방문이 늘어나자 래플스 호텔의 바텐더는 유럽의 풍미와 싱가포르의 석양을 아우른 싱가포르 슬링을 선보였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 사태로 그 전략적 가치가 주목받는 믈라카 해협과 남중국해가 만나는 지점이 바로 싱가포르다. 싱가포르 슬링은 달라진 싱가포르의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인 금융·물류 허브가 된 싱가포르와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미래 지향적 협력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양국에 새 정부가 들어선 2025년, 이재명 대통령과 로렌스 웡 싱가포르 총리는 그해 11월 서울에서 수교 50주년을 맞이해 전략적 동반자 관계 구축을 선언했다. 4개월 뒤인 올해 3월에는 이 대통령이 싱가포르를 국빈 방문했다. 내년에는 싱가포르가 아세안(ASEAN) 의장국을 맡는다. 2028년에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2029년에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각각 서울에서 개최된다. 이처럼 양국 정상이 거의 매년 만날 수 있는 일정은 소중한 외교 자산이다.

경제 협력 또한 깊어지고 있다. 2025년 양국의 총 교역액은 309억달러로 아세안 중 베트남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싱가포르 투자액(누계)은 423억달러에 달한다. 싱가포르의 한국 투자액은 375억달러로 우리에겐 세계 4위 투자국이다. 2024년까지 우리 해외 건설 누적 수주가 1조달러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싱가포르는 482억달러어치를 기여했다. 앞서 얘기한 래플스 호텔, 마리나베이 샌즈, 선테크 시티 등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건물이 모두 우리 기업의 손에서 탄생했다.

미래 성장동력에서도 양국 간 접점이 많은 편이다. 지난 3월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인공지능(AI), 원자력발전, 방위산업, 환경위성 등 분야에서 첨단기술 및 제조 관련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AI 선도국으로서 ‘협력 프레임워크’를 체결해 공동 연구와 투자 확대 등 지속가능한 협력을 이어가기로 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등 K컬처의 인기도 확산하고 있다. 작년 11월 시작된 제주산 한우·한돈의 싱가포르 수출은 스마트팜을 포함한 농식품 분야 전반적인 협력으로 확대됐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지정학적 불확실성 고조, 공급망 재편, 보호무역주의 확산이라는 복합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국과 싱가포르는 자유롭고 안정적인 국제질서 아래 번영할 수 있는 개방경제 중견국이다. 한국의 기술력과 산업 역량, 싱가포르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혁신 생태계는 시너지 효과를 내기에 충분하다. 양국은 개방적인 자유무역 질서의 유용성을 증명해 가며 미래 산업의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진정한 전략적 동반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