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아름다운 서울을 꿈꾸며

입력 2026-06-03 18:46
수정 2026-06-04 00:02
내 이름은 미경(美京)이다. 아름다울 미(美)에 서울 경(京)자를 쓴다. 어릴 적에는 그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친구들 가운데 같은 이름이 너무 많았고, 막내라서 대충 지은 이름 같아 개명도 고민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름이란 부모가 자식에게 건네는 첫 번째 이야기이자 가장 간절한 염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도 서울을 지방이라고 부르는 것이 낯설 수 있지만, 서울 또한 엄연히 지방자치법상 지방자치단체다. 내가 속한 변호사회 뿐만 아니라 법원, 검찰청 앞에도 모두 ‘서울지방’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나는 그 서울지방에서 태어난 가난한 꿀집의 넷째 딸이다. 1960년대 중반 결혼한 부모님은 평생을 벌과 함께 살아온 동업자였다. 제주에서 철원까지 꽃이 피는 순서를 따라 이동하며 벌을 길렀다. 꽃이 지면 천막을 걷고 다시 길을 나서는 삶 속에서 세 명의 언니는 천막 안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직접 탯줄을 잘랐다.

1970년대 초 큰언니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버지는 서울역 옆 용산구 후암동에 자리를 잡았다. 평생 차가 없던 아버지에겐 교통이 편한 곳이 필요했고, 아이들이 걸어서 학교에 다닐 수 있어야 했다. 배움이 짧았던 부모님은 자식들만큼은 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시키고 싶어 하셨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후암동의 작은 셋방에서 아이들을 지켰고, 아버지는 홀로 전국의 산야를 누비며 벌을 쳤다. 꽃을 따라 떠도는 삶은 계속됐지만, 자식들만큼은 한곳에 뿌리를 내리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양봉가에게 가장 바쁜 여름인 1975년, 나는 서울역 근처 한 병원에서 태어났다. 넷째 딸이라는 이유로 하마터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아버지는 “딸이어도 예쁘고 똑똑하면 된다”며 나를 지켜주셨다. 아름다운 서울에서 태어난 딸.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아버지가 이름에 담은 것은 단순히 출생지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 이름에는 떠돌이 생활을 끝내고 자식들을 서울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하겠다는 가장의 꿈이 담겨 있었다.

꿀을 팔아 방세를 내고 학비를 마련하던 시절, 아버지는 자신의 꿈보다 자식들의 미래를 먼저 키우고 계셨다. 아버지는 내가 고시 공부를 하던 시절을 이야기하며 “네 공부 운이 좋아서 그해 꿀도 많이 땄다”고 웃곤 하신다. 하지만 그 풍년은 우연이 아니었다. 고시촌에서 혼자 공부하던 막내딸을 생각하며 전국의 산과 들을 누빈 아버지의 시간과 정성이 만들어낸 결실이었다.

이 글이 세상과 만나는 지금, 우리 사회는 또 한 번의 큰 선거를 지나고 있다. 결과에 따라 기뻐하는 사람도,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공동체가 조금 더 살기 좋고 평안해지는 것, 그것이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아버지는 내게 재산 대신 이름 석 자를 물려주셨고 그 안에 당신의 꿈을 담아두셨다. 내 이름처럼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도시 서울이 진정으로 아름다워지기를 꿈꾼다. 서울만이 아니다. 누군가의 이름처럼, 누군가의 고향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곳이 저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기를, 서로 다른 생각과 선택을 넘어 우리의 공동체가 조금 더 성숙하고 따뜻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