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이집트 관계가 원조국, 수혜국이 아니라 ‘윈윈’ 협력에 기반한 진정한 파트너가 되길 바랍니다.”
바드르 압델라티 이집트 외교장관(사진)은 지난 2일 주한이집트대사관에서 한 인터뷰에서 “어떻게 하면 한국 기업을 설득해 이집트에 오게 하고, 투자를 세 배 늘리도록 할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라며 이같이 말했다.
압델라티 장관은 30년 넘게 외교 현장을 누빈 베테랑 외교관이다. 미국 워싱턴DC와 이스라엘 텔아비브 등 주요 지역에서 근무하며 이집트 외교의 굵직한 현안을 담당했다. 2024년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유럽연합(EU),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주재 대표부 수장을 맡았다. 전날 열린 한·아프리카 외교장관회의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압델라티 장관은 “지난해 11월 이재명 대통령의 이집트 방문으로 양국 관계가 더 공고해졌다”며 “한국과 이집트의 정치적 관계는 훌륭한 수준이고 경제와 무역에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에즈운하 경제특구 내 한국 산업 단지를 조성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수에즈운하는 전 세계 해상 물동량의 13%가 통과하는 핵심 교역로다. 그는 “중국은 20년 전부터 이곳에 진출해 자신들의 산업단지 면적을 두 배로 늘렸다”며 “한국과는 조선, 인공지능(AI), 방산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것을 함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압델라티 장관은 미국·이란 전쟁 등 역내 지정학적 위기도 언급했다. 그는 “군사 긴장 고조는 바브엘만데브해협이든 호르무즈해협이든 항해의 자유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며 “어떤 위기도 군사적 방법으로는 풀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바브엘만데브해협은 홍해를 통해 수에즈운하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미국과 이란 간 군사 긴장이 고조되자 이란혁명수비대가 대리 세력인 후티 반군을 이용해 바브엘만데브해협까지 봉쇄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최근 압델라티 장관이 미국과 이란 중재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기도 하다. 그는 “방한 이후 카이로로 돌아가 지역 파트너들과 함께 미국과 이란 간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집트는 가자지구 전쟁과 수단에서 발생하는 인도주의 위기 해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가자 평화구상안을 이행하지 않는 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중동에 영구적 평화는 없다”며 “가자지구 내 이스라엘 군대 철수에 초점을 맞춘 평화안 2단계는 논의조차 되지 않는 현실에 매우 화가 난다”고 강하게 말했다.
압델라티 장관은 이처럼 각종 국제 분쟁에서 이집트가 중재국으로 활약할 수 있는 이유를 균형 외교에서 찾았다. 모든 국가와 전략적 관계를 맺는 동시에 특정 진영에 가담하지 않는 것이 이집트의 외교적 ‘레드라인’(한계선)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집트 같은 중견국은 한쪽 진영에 서서 다른 쪽 진영에 맞서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며 “세계가 갈수록 양극화하고 다자주의가 약화하고 있지만 블록 정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명현 기자 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