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의 국내 바이오의약품 원·부자재 시장 장악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해외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져 공급망 위기 재발 시 필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제품 수급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글로벌 기업 점유율 급등
3일 신용정보업체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세포를 키우는 배양액(배지)이나 의약품 정제장비 등을 공급하는 국내 바이오 소부장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의 매출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써모피셔와 싸이티바, 독일 머크와 싸토리우스 4개사의 한국법인 매출은 지난해 1조7410억원을 기록했다. 2020년 합계 1조123억원으로 처음 1조원을 넘어선 뒤 지난 5년 동안 증가율이 72.0%에 달한다.
고객사인 한국 바이오 기업들의 빠른 성장이 이들 소부장 기업의 매출 증가를 이끌었다. 글로벌 선두를 다투는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매출은 2020년 1조1648억원에서 2025년 4조5570억원으로 291.2% 늘었다. 에이비엘바이오(879.0%), 알테오젠(409.2%), 셀트리온(125.1%) 등도 같은 기간 매출이 급증했다. KRX 헬스케어 지수 구성 종목의 매출 합계는 이 기간 약 31조3000억원에서 41조600억원으로 연평균 5.6% 증가했다.
글로벌 기업의 선전과 달리 토종 소부장 기업은 크게 고전하고 있다. 작년 매출 최상위 기업인 아미코젠, 대봉엘에스, 마이크로디지탈, 서린바이오의 합산 매출액은 지난해 2340억원으로 2024년 3545억원에서 급감했다. 각각의 상위 4개사 매출을 전체 시장으로 가정하면 시장 90% 가까이를 글로벌 기업이 장악한 셈이다. 상장사인 토종 4개사의 합산 시가총액은 지난 2일 기준 3042억원으로 1년 전(6331억원) 대비 반토막 났다.
국내 기업은 업력뿐만 아니라 가격 경쟁에서도 밀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4대 기업은 규모의 경제를 기반으로 공격적인 단가 인하 정책을 펼치고 있다. 글로벌 매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5% 수준에 불과해 가능한 일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은 매출 규모가 큰 만큼 개별 제품의 단가를 낮게 책정하는 게 가능하다”며 “국내 기업은 제품 카탈로그에 나와 있는 정가를 기준으로 납품 단가를 협상하지만, 글로벌 기업은 애초에 정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공급망 안정 위한 육성책 필요”시장 전문가들은 국가 전략산업으로서 바이오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정부가 소부장 산업 육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 때와 같은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닥치면 국내 바이오 기업의 원·부자재 수급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바이오 소부장 국산화율은 1~2년 전과 비교해 절반 이하로 떨어져 현재 5%에도 한참 못 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국내 바이오산업의 소부장 밸류체인이 취약해졌다”고 말했다.
바이오 소부장 기업 움틀의 박성률 대표는 “중국은 거대한 내수와 정책 자금을 기반으로 바이오 소부장 산업을 키우고 있고, 미국과 유럽도 바이오 공급망 안정성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최근 조성 중인 국민성장펀드가 바이오 소부장 산업을 지원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오기환 한국바이오협회 전무는 “바이오의약품 제조 기업 관점에서 비용 부담을 안으면서까지 국산 소부장을 쓰기가 조심스러운 게 현실”이라며 “소부장을 국산으로 대체하는 기업에 정부가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