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크포인트’ 석유 제재, 이란·이라크 숨통 죄다 [홍영식의 이슈 워치]

입력 2026-06-05 04:16



초크포인트(Choke Point)’는 병목을 이루는 해협과 운하와 같은 전략적 요충지를 뜻한다. 이곳을 장악하면 글로벌 물류와 에너지 공급망에 충격을 줄 수 있다. 비단 지정학적인 개념으로만 쓰이지 않는다. 미국은 경쟁국들에 맞서 여러 경제적 제재 수단들을 ‘초크포인트’로 삼아 적극 동원하고 있다. 석유 제재는 금융, 관세, 기술 통제 등과 함께 대표적인 비지정학 ‘초크포인트’로 꼽힌다.

그러나 석유 제재는 인플레이션 등 세계경제에 불황 요인을 초래할 수 있어 적정한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동맹 간에도 심각한 분열을 낳고 기대한 만큼 효과를 거두기도 쉽지 않다. 부메랑으로 돌아와 본국 경제에 치명상을 안길 수도 있다.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석유와 가스를 수입에 거의 의존하는 유럽 국가들이 대체 수입 라인을 구하느라 애를 먹으면서 대서양 동맹을 충돌시킨 것이 단적인 예다.

미국은 중동에서 석유가 쏟아진 이후 이를 외교안보적 통제 수단으로 삼아 왔다. 1991년 걸프전 이후 미국은 이라크산 석유 수출을 금지했다. 당시 이라크의 석유 수출 의존도는 나라 전체 수입의 95%를 차지했다. 석유 수출 금지는 나라 목줄을 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미국은 유엔의 이름을 빌려 이라크에 포괄적 경제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이 조치가 유아 사망률과 영양실조율을 크게 높이는 등 이라크 국민에게 극심한 인도주의적 피해를 불렀다. 제재 무용론이 일자 미국은 민생은 풀고 무기는 통제하는 투트랙 전략을 폈다. 일정 규모의 원유 수출은 허용하되 수익금은 유엔이 관리하는 계좌에 예치하고 식량과 의약품, 소비재 등 생활 필수품 구매에만 사용하도록 했다.
후세인 핵 야망 꺾었으나 전쟁 목적 달성 실패

이런 조치는 후세인의 핵 프로그램을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다. 석유 돈줄이 조이면서 후세인은 군사 장비 구매에 지장을 받았다. 유엔 이라크 무기사찰단장인 한스 블릭스는 “유엔과 세계는 자신도 모르게 이라크의 무장해제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에드먼드 피시먼 ‘국가는 무엇으로 싸우는가’). 하지만 후세인의 돈줄을 완벽하게 틀어막지는 못했다. 후세인은 밀수업자를 통한 석유 우회 판매로 눈을 돌리면서 석유는 사방에서 새고 있었다. 추후 유엔 조사위원회(위원장 폴 볼커) 조사 결과 후세인이 불법 리베이트 등으로 확보한 금액은 약 18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후세인이 근근이 버티는 동력이 됐다. 게다가 이라크산 밀수 석유에 의존하던 요르단, 시리아 등 이웃 국가들은 제재 협조에 소극적이었다. 중동 내 반미 세력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려 한 러시아도 반대했다.

9·11 테러 사건으로 급반전됐다. 미국 내 강경파 목소리가 커지면서 대량살상무기(WMD) 사찰과 정권교체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었다. 석유 제재가 효과적이지 않다는 비난을 받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를 침공해 후세인을 제거하게 된다. 독재자의 군대를 무너뜨려 중동에서 핵강국 출현을 막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이라크를 친미 교두보로 삼으려는 미국의 의도는 결과적으로 관철되지 않았다. 이슬람국가(IS) 등 극단 무장세력이 힘을 키웠고, 내전이 심화됐으며, 결국 시아파 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시아파 맹주 이란의 영항력을 키워주는 꼴이 된 것이다. 전투는 이기고 전쟁에선 졌다는 달갑지 않은 비판을 받았다.

다음은 이란. 이란 제재에 나선 부시 행정부는 무기와 핵 관련 부문 이외에 석유 제재는 쉽지 않았다. 유가 급등을 우려한 유럽 국가들의 반대가 심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내에서도 부정적 기류가 적지 않았다. 부시 행정부는 석유 차단보다 핵 확산 억제에 제재 초점을 맞췄다. 석유 제재는 세계경제에 워낙 큰 여파를 미치는 것이어서 산유국들을 고립시키는 것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와선 전략을 바꿨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 핵 프로그램을 없애기 위해 군사 공격을 계획했다. 반면 미국은 석유 제재로 이란 핵을 저지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이란은 예산 65%, 수출의 70%를 석유와 천연가스에 의존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에너지 수출 제재는 이란 재정의 숨통을 조여 핵 포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자신했다. 난관이 적지 않았다. 당장 이란 석유의 주요 수입국인 중국과 인도 설득이 과제였다. 두 나라는 미국이 석유를 사라 말라 요구할 권한이 없다고 반발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제재팀은 이란을 핵 협상으로 유도하기 위해 정교하고 강력한 대책을 짰다. 핵심은 제3자까지 제재 대상으로 삼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포괄적 이란제재법(CISADA)을 채택했다. 휘발유 등 이란으로 석유제품을 수출하거나 이란 에너지 개발에 참여하는 외국 기업들에 미국 시장 접근을 제한했다. 국방수권법(NDAA)까지 동원해 제3국 기업들이 이란 은행과 거래하면 달러 결제망에서 퇴출시킨다고 압박했다. 이란에 대한 원유 운송 보험 중단, 이란 은행 국제 결제·송금 네트워크(SWIFT) 차단 조치도 취했다.

원유 수출 대금의 결제 창구 역할을 해 온 이란 중앙은행도 제재 대상에 포함했다. 미국 제재팀은 해외 조건부 계좌에 있는 이란 석유 자금 1000억달러 이상을 동결하는 방법까지 찾아냈다(‘국가는 무엇으로 싸우는가’). 미국은 이란 석유 전면 수출 금지는 국제유가 급등과 수입국들의 반발을 부를 수 있어 수입 규모를 지속적으로 감축하는 국가엔 180일간 제재를 유예해줬다.
미국 총 한 방 안쏘고 이란 정치 변화 촉발했지만…

미국의 제재 조치로 이란 석유 수출은 절반 이하로 줄었고 1600억 달러의 손실을 입혔다. 2011년까지 연평균 5%이던 이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년 뒤 마이너스로 급전직하했다. 석유 제재로 이란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고 리알화 가치가 급락하는 등 경제가 곤두박질쳤다. 정권 지지 기반인 상업 중심지에서까지 시위가 발생했다.

서방의 제재에 지친 유권자들은 이슬람 시아파 보수 강경파를 심판했다. 2013년 대선에서 온건파 하산 로하니가 승리했다. 미국의 석유 제재가 정치 변화를 부른 것이다. 미국과 이란이 주축이 되고 프랑스, 영국, 독일, 러시아, 중국 등이 참여해 2015년 체결된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 이름의 이란 핵협정은 석유 제재의 결과물이다. 무력이 아니라 석유 제재라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오바마 대통령은 총 한 방 쏘지 않고 이란 문제를 해결했다고 자평했다. 제재가 풀리면서 이란의 경제성장률은 2016년 13.4%에 달했다.

다만 JCPOA의 한계도 꾸준히 지적돼 왔다. 농축 권한과 핵물질, 원심분리기 존치 인정은 이란이 언제든 핵무기 개발에 나설 수 있는 여지를 줬다는 것이 미국 강경파의 불만이었다. 탄도미사일이 협정에서 제외됐고 15년 시한을 둔 것도 약점으로 지적됐다. 미국 일각에선 이란이 전체 핵프로그램을 영구적으로 폐기할 때까지 압력을 가했어야 했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표적이다. 이런 한계들은 트럼프가 1기 집권 때 JCPOA 파기를 선언한데 이어 이란 공격에 나선 명분이 됐다. 트럼프는 에너지 패권 확보를 성공적 대통령으로 간주했다(하이케 부흐터 ‘석유 전쟁’).(⑦회에 계속)


홍영식 한국핵안보전략포럼 운영위원(전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