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 지난달 중순 이후 상승 동력을 잃고 두 달 전 가격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며 투자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쏠린 데다,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에서도 대규모 자금이 유출된 영향이다. 시장의 관심은 미국 통화정책으로 옮겨가고 있다.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하거나 유동성 환경이 더 나빠질 경우 비트코인의 단기 반등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꺾인 비트코인 상승세
3일 업비트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지난 1일 1억414만원에 거래를 마쳤다. 업비트에서 비트코인이 1억400만원대에 거래된 것은 종가 기준 지난 4월 5일(1억428만원) 이후 처음이다. 최근 하락세도 뚜렷하다. 비트코인은 5월 25일 1억1489만원을 기록한 이후 4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비트코인 가격은 3월 말부터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3월 29일 1억37만원에서 출발한 비트코인은 상승세를 타고 4월 15일 1억1045만원에 도달했다. 미국 상원 은행위원회가 가상자산 법안인 ‘클래리티법(CLARITY Act)’을 통과시킨 5월에는 훈풍이 불었다. 5월 10일 1억2043만원, 11일에는 1억2009만원을 기록하며 2거래일 연속 올해 최고 수준인 1억2000만원대를 유지했다. 다만 비트코인은 일주일 후인 18일 1억1432만원으로 떨어졌다.
해외 시장에서도 비트코인 흐름은 녹록지 않다.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비트코인은 지난달 6일 8만2499달러, 이후 11일엔 8만2139달러를 기록하며 강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16일엔 8만달러 선이 무너졌고, 1일 기준으로는 7만3000달러 선에서 거래됐다. ◇증시 강세·자금 유출 ‘이중 악재’비트코인 가격 하락에는 여러 대외 요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먼저 증시 호황이 이어지면서 비트코인에 대한 투자 기대가 상대적으로 식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증시가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면서 투자 자금이 증시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1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나스닥종합지수는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관련 종목 강세도 이어지고 있다.
ETF 자금이 대규모로 빠져나가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파사이드 인베스터에 따르면 미국 상장 12개 비트코인 현물 ETF는 지난달 15일부터 29일까지 10거래일 연속 순유출을 기록했다. 이 기간 빠져나간 자금은 29억6230만달러(약 4조4917억원)에 이른다. 27일 하루에만 7억3340만달러(약 1조1061억원)가 유출됐다.
시장 참여자들도 5월 초와 비교해 신중한 모습이다. 가상자산 데이터 조사업체 얼터너티브가 집계하는 공포·탐욕 지수는 1일 ‘공포’에 해당하는 29를 기록했다. 이 지수는 0에 가까울수록 투자자의 공포 심리가 강한 상태를 의미한다. 지난달 5일에는 50, 12일에는 49로 ‘중립’ 수준을 유지했다. 반면 같은 달 16일부터는 ‘공포’ 구간인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을 오가고 있다. ◇美 통화 정책에 쏠린 눈매파(통화 긴축 선호)로 꼽히는 케빈 워시 의장이 지난달 22일 정식으로 미국 중앙은행(Fed)에 합류한 점도 비트코인 시장에는 압박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가상자산은 금리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기준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면 시중 유동성이 줄어들고 위험자산 투자 심리도 위축되는 경향이 있다.
현재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4월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 올랐다고 최근 밝혔다. PCE 가격지수는 Fed가 물가 흐름을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참고하는 지표 중 하나다. 물가 상승세가 이어질수록 기준금리 인하 시점도 늦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Fed의 긴축 기조도 가상자산 시장에는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간) 공개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는 다수의 위원이 인플레이션 장기화를 우려한 내용이 담겼다. 참석자 다수는 물가가 Fed 목표치인 2%로 복귀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Fed 내부에서도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 기대가 약해질수록 비트코인 등 위험자산 가격에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봤다.
유동성이 추가 감소하는 상황도 무시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미국 투자정보회사 모트캐피털매니지먼트의 마이클 크레이머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재무부의 국채 결제 일정에 따라 이달 5일까지 1500억달러 규모의 유동성이 시장에서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결국 비트코인과 같은 투자 자산에 유입될 자금이 줄어들 것이라는 게 크레이머 CEO의 분석이다. 그는 “재무부 결제로 유동성이 흡수되면 비트코인은 훨씬 더 낮은 수준으로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박시온 기자 ushire90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