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객선비 술잔부터 먼로 립스틱까지…"굿즈 사러 그림 본다"

입력 2026-06-02 15:40
수정 2026-06-02 16:10

미술·박물관 전시를 관람한 뒤 사오는 기념품은 엽서와 도록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티셔츠부터 코스메틱, 인테리어 소품까지 판매 품목이 확대되며 미술관 굿즈가 기념품을 넘어 전시 경험을 소비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취객선비 3인방 변색잔’ 등 소장유물을 활용한 국립중앙박물관의 ‘뮷즈(MU:DS·박물관굿즈)’가 연간 400억원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K컬처를 이끄는 가장 ‘힙’한 소비재로 자리매김한 가운데 해외 주요 미술관들도 굿즈를 핵심 수익 기반으로 활용하고 있다.

2일 미술계에 따르면 런던 국립초상화박물관(NPG)은 오는 4일 개막하는 메릴린 먼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특별전과 연계해 다양한 굿즈를 판매한다. 1950년대 할리우드 아이콘이었던 먼로가 자주 착용했던 캣아이 선글라스부터 그를 상징하는 붉은색 한정판 립스틱 등을 선보인다.

박물관 상품개발 책임자인 에드 심프슨은 가디언을 통해 “전시 경험을 직접 반영하는 포스터, 엽서도 있지만 다양한 제품을 통해 전시를 직설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 경험을 상품으로 재가공해 일상에서도 전시 소비를 이어가겠다는 뜻이다.

연간 수백만 명이 찾는 영국 테이트 모던도 굿즈를 전시 연장선으로 확장하고 있다. 오는 8월까지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인 트레이시 에민의 회고전을 진행하면서 고양이 밥그릇과 머그컵 등을 판매하고 있다.

우울, 외로움, 관계의 상처 같은 사적인 감정을 다양한 매체로 거칠게 표현하는 그의 작품세계에서 고양이가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다. 티컵, 팬케이크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키우는 그는 이들을 “소울메이트”라 표현하며 작품 속 주요 소재로 활용한다. 테이트모던은 이런 작가의 상징적 이미지를 굿즈로 확장한 셈이다.


굿즈는 관람객 서비스, 전시 마케팅 수단을 넘어 미술관의 주요 수익 사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뮷즈가 대표적이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뮷즈 매출액은 413억 원으로 전년 대비 94.8% 증가했다. 2021년 65억 원 수준이던 뮷즈의 연간 매출액은 문화유산을 디자인과 생활소품, 라이프스타일 장르로 재해석한 상품을 선보이며 점프업했다. 김홍도의 걸작 ‘평안감사향연도’ 한구석에 널브러진 취객을 조명해 술을 채우면 취객의 얼굴이 빨갛게 변하는 ‘취객선비 변색잔’은 6만 개가 팔리며 중고시장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연간 소장품 구입예산이 수년째 40억원 안팎에 그치고, 최근 유료화 논의를 벌이는 등 제한적인 재원이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이런 상황에서 뮷즈 사업 활성화는 박물관 문화사업 등 박물관 운영의 재정적 여력을 확보하는 기반이 된다는 평가다.

실제로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은 입장료, 기부·후원과 함께 굿즈 등 소매 매출로 운영 재원을 확보하고 있다. MoMA에 따르면 2025회계연도에 문화상품 판매·출판·식음료 판매 매출이 약 8335만 달러로, 연간 티켓 수입(4096만 달러)의 두 배를 웃돌았다. 영국 빅토리아앤알버트 뮤지엄(V&A)은 2024년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전시와 연계한 굿즈 판매로 7주 만에 110만 파운드(약 20억 원)의 매출을 내기도 했다.

한 미술관 관계자는 “미술관 굿즈가 전시장 출구에 마련된 기념품숍을 넘어 전시와 대중의 접점을 확장하는 매개체로 기능하고 있다”며 “수익 측면에서도 유의미한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