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6월 01일 10:2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을 최대 28.8%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운용 여력을 넓힌 것으로 확인됐다. 코스피가 8000대 중후반까지 오르더라도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을 기계적으로 팔 필요가 없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증시 상승 국면마다 국민연금이 ‘매도 주체’로 부각되던 구조가 당분간 완화될 전망이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올해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5.9%포인트 높였다. 올해 들어 코스피가 급등하면서 국내주식 실제 비중이 기존 허용범위를 크게 웃돌자, 6월 말 종료 예정이던 리밸런싱 유예 조치의 후속 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핵심은 목표비중 상향에 그치지 않는다. 기금위는 국내주식의 전략적자산배분(SAA) 허용범위도 기존 ±3%포인트에서 ±6%포인트로 확대했다. 보건복지부는 시장 영향을 고려해 구체적인 확대 폭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본지 취재 결과 SAA 허용범위를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6%포인트로 늘린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실질 허용 상단은 28.8%로 올라간다. 목표비중 20.8%에 SAA 허용범위 6%포인트, 전술적자산배분(TAA) 허용범위 2%포인트를 더한 수치다. 기존 상단은 목표비중 14.9%에 SAA 3%포인트, TAA 2%포인트를 합친 19.9%였다. 국내주식 운용 상단이 한 번에 8.9%포인트 높아진 셈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로 국민연금발 매도 압력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보고 있다. 국민연금은 국내 증시 시가총액의 8~9%를 보유한 최대 장기투자자다. 리밸런싱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면 코스피 상승 국면에서 국내주식 비중을 낮추기 위한 대규모 매도에 나설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증시가 오를수록 국민연금 매물이 상승세를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하지만 허용 상단이 28.8%까지 높아지면서 계산이 달라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 등에 따르면 해외주식, 채권, 대체투자 등 다른 자산군 가치가 현 수준에서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코스피가 8000대 중후반까지 상승해도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은 새 허용범위 안에 머무는 것으로 분석됐다. 증시가 추가 상승하더라도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을 기계적으로 팔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다. 시장 상황에 따라서는 추가 매수 여력도 확보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결정은 정부의 자본시장 활성화 기조와도 맞물려 있다. 국민연금이 기존 운용 기준에 묶여 증시 상승 때마다 매도 주체로 나서면 ‘코스피 레벨업’ 정책과 엇박자를 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금위가 목표비중과 SAA 허용범위를 동시에 손본 것은 국내주식 비중 확대를 단순 유예가 아니라 제도권 안에서 흡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만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 확대가 ‘고무줄 자산배분’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증시 급등으로 기존 허용범위를 넘어서자 리밸런싱 원칙에 따라 비중을 조정하는 대신 목표비중과 허용범위를 사후적으로 끌어올린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국내 증시 부양 기관이 아니라 국민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장기 수탁자인 만큼 특정 자산군 쏠림과 홈바이어스(자국 편향) 확대에 대한 경계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연기금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코스피 상승장의 매도 주체가 되는 부담은 덜었지만, 국내주식 비중이 높아질수록 하락장에서는 기금 전체가 받는 충격도 커질 수밖에 없다”며 “증시 부양 논리와 장기 수익률·분산투자 원칙을 구분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