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州)마다 다른 조세 정책이 미국 각 지역의 기업 유치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친기업 세제를 마련한 텍사스에 최근 5년간 200개 가까운 기업이 몰리고, 영화·미디어산업을 위한 세제 혜택을 내놓은 뉴저지는 ‘제2 할리우드’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과 자산가에게 고율 세금을 부과하는 캘리포니아와 워싱턴에선 기업 유출이 이어지고 있다. ◇ 제2 할리우드 된 뉴저지1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최근 뉴저지주 곳곳에서 ‘촬영 단지’ 건설 붐이 일고 있다. 넷플릭스는 올해 4월부터 대서양 연안의 옛 군사 도시 포트몬머스에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 이상 투자해 12개 스튜디오를 갖춘 촬영 시설을 건립 중이다. 대형 영화 제작사 파라마운트와 라이언스게이트도 뉴저지주 내 영화 제작 단지에서 10년간 콘텐츠를 만들기로 했다.
이는 뉴저지의 파격적 세제 혜택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2018년부터 지난해 1월까지 뉴저지주를 이끈 필 머피 주지사는 민주당 소속이지만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지인인 톰 버나드 소니픽처스 사장과 의기투합해 취임 첫해부터 영화·미디어 산업을 겨냥한 세제 혜택을 마련했다. “뉴저지가 여전히 자동차, 트럭, 화학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시대는 지났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우선 영화 제작비에 최대 35% 세액공제를 제공하기로 했다. 장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10년 이상 뉴저지주에서 촬영을 약속하는 기업에는 최대 10%포인트에 달하는 추가 세금 인센티브를 지급한다.
지난해 제작비 1000만달러 이상을 기준으로만 영화와 TV 프로그램 등 17편이 뉴저지에서 촬영됐다. 넷플릭스의 정치 스릴러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미국 내 영화·TV 투자액은 전년 대비 20% 정도 줄었지만 뉴저지는 10억달러 안팎의 투자를 유치했다. ◇ 삼성도 이전하는 텍사스텍사스주는 법인세율을 0%로 낮추고 친기업 법안을 잇달아 제정해 기업 유치에 성공하고 있다. 부동산 조사 업체 CBRE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5년까지 테슬라 등 184개 기업이 오스틴, 댈러스, 휴스턴 등 텍사스주 대도시로 본사 주소지를 옮겼다.
최근엔 엑슨모빌이 본사를 텍사스로 옮기기로 결정했고, 삼성전자 완제품 사업의 미국 영업을 총괄하는 북미총괄도 뉴저지에서 댈러스 인근 플레이노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전체 신규 일자리 증가의 20%가 텍사스에서 이뤄졌다”며 “캘리포니아를 제치고 미국 최대 경제권으로 부상하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분석했다.
친기업 법안과 인프라도 강화하고 있다. ‘기업법 중심지’를 노리는 텍사스는 2024년 전문 판사들로 구성된 텍사스 기업법원을 설립했다. 2025년엔 ‘지분 3% 미만’ 주주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도록 하고, 대주주만 위임장 제안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도입했다.
이 밖에 애리조나주 피닉스, 테네시주 내슈빌에도 5년간 20개 넘는 기업이 옮겨왔다. 애리조나주는 반도체, 테네시주는 헬스케어 기업을 대상으로 세제 혜택을 주고 있다. 테네시는 개인 소득세를 0%로 없앴다. ◇ 캘리포니아 유출로 몸살캘리포니아, 워싱턴 등 전통적으로 기업이 몰린 주들은 인력 및 기업 유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에서만 5년간 기업 본사 183곳이 다른 주로 이전했다.
높은 수준의 법인세율에 더해 고액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부유세 도입 논의까지 본격화하고 있는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캘리포니아는 오는 11월 ‘억만장자세’로 불리는 세금 도입안을 표결에 부칠 전망이다. 순자산 10억달러 이상 부유층에게 자산의 5%를 일회성 세금으로 내도록 한 뒤 저소득층 의료보험 예산으로 넣는 게 핵심이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지난달 4일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임금에 100% 세금을 물리면 아무도 일을 하지 않는 것처럼 자본에도 세금을 매기면 투자가 완전히 멈춘다”고 지적했다.
세금 인상 정책이 역풍을 맞고 원상복구되기도 한다. 워싱턴주는 지난해 7월 상속세율을 미국 내 최고치인 35%로 올렸지만 다음달 1일부터 과거와 같은 수준인 20%로 내리기로 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