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기후가 바꾸는 밥상, 농업이 열 미래

입력 2026-06-01 18:11
수정 2026-06-02 00:30
우리가 기후변화를 가장 크게 실감하는 순간은 언제일까. 뉴스 속 이상기후 보도나 학술 보고서 그래프보다, 어쩌면 일상의 작은 장면에서 먼저 느끼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 여름방학이면 시골 외할머니댁에서 며칠씩 지내곤 했다. 처마 끝에 앉아 사촌들과 쏟아지는 소나기를 바라보다가, 끝내 참지 못하고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흙이 빗물에 파여 작은 물길이 생기면 그 곁에 두꺼비집을 짓고 놀았다. 그 시절 소나기는 가장 반가운 놀잇감이었다. 흙냄새가 퍼지고 빗물이 고이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밖으로 뛰어나갔다. 비는 계절이 주는 선물이었고, 여름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그러나 요즘 비는 다르다.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집중호우와 길어지는 장마,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이변은 반가움보다 걱정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농촌의 변화는 더 절박하다. 지난해 기록적인 폭염과 집중호우, 냉해와 병해충 확산까지 겹치며 농촌은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수확을 앞두고 무너진 과수원을 바라보거나, 하루아침에 병해충이 번진 논을 지켜봐야 하는 농업인의 막막함은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

기후는 이미 밥상 지도를 바꾸고 있다. 한때 익숙했던 ‘대구 능금(사과)’은 점점 옛 교과서 속 표현이 됐다. 온난화로 경북의 사과 재배 면적은 줄고, 강원 지역 재배 면적은 크게 증가했다. 봄에는 이상고온으로 꽃이 일찍 피었다가 뒤이은 냉해에 시들고, 여름에는 고온을 타고 병해충이 빠르게 퍼진다. 벼멸구 같은 해충 확산도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기후변화는 작물의 생육 시기와 재배 지역, 병해충 발생 양상까지 바꿨다.

기후변화는 농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밥상과 직결된 일이다. 사과가 어디서 자라는지, 배추가 제때 자라는지, 쌀과 채소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는지가 모두 우리의 일상과 이어진다. 농업이 흔들리면 밥상이 흔들리고, 밥상이 흔들리면 국민의 삶도 불안해진다. 이제 농업인은 하늘만 바라보며 농사짓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더 빨리 기후를 읽고, 더 정밀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이 절실하다. 변화를 피할 수는 없다. 농업전문가로서 우리가 한발 먼저 대비하고, 국민 밥상과 미래를 지켜야 할 때다.

기후에 강한 품종을 개발하고, 물과 비료를 아끼는 재배 기술을 개발하며, 병해충을 예측하는 일은 더 이상 연구실 안의 과제가 아니다. 농업인이 내일의 날씨와 작물의 변화를 조금 더 빨리 알고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곧 국민 밥상을 지키는 일이다. 소나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웃던 그 여름날을 다시 떠올린다. 비를 피하지 않고 반기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길, 지금의 기후 위기 앞에서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