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는 그의 저서 <내러티브 경제학>에서 전염병처럼 번지는 ‘이야기’가 어떻게 경제적 사건을 추진하는지 입증했다. 바이러스가 인간의 신체를 감염시키듯, 잘 짜인 내러티브는 대중의 뇌리에 침투해 주가, 부동산, 나아가 거시경제의 흐름까지 바꾼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숫자가 아닌 서사가 시장 가치를 결정하는 ‘픽션 노믹스(Fictionomics)’의 시대다. 기술 고도화가 인간을 더욱 이성적으로 만들 것 같지만, 역설적으로 정보 과잉 시대의 인간은 가장 자극적이고 명쾌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렇다면 변동성과 허구가 판치는 이 시대에 비즈니스 리더들은 어떻게 대중의 마인드 셋을 경영하고 기업의 가치를 지켜내야 할까. 픽션 노믹스의 파도 위에서 리더가 반드시 짚어야 할 네 가지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기업의 재무제표만큼이나 ‘서사 자본(Narrative Capital)’을 측정하고 축적해야 한다. 과거의 기업 가치는 주로 자산, 매출, 현금흐름 같은 물리적 지표로 평가받았다. 디지털 소통이 빛의 속도로 이뤄지는 현대 시장에서 대중이 기업에 부여하는 서사는 그 자체로 강력한 무형자산이 된다. 실적이 아무리 좋아도 매력적인 내러티브가 결여된 기업은 매력 없는 ‘백서’에 불과하며, 대중의 기억에서 쉽게 잊힌다. 기업의 고유한 정체성과 미래 비전을 관통하는 독창적인 스토리를 발굴하고 지속해서 자본화하는 능력이 경영자의 핵심 역량이 됐다.
둘째, 실적과 내러티브의 간극을 관리하는 ‘내러티브 리스크 매니지먼트’가 필수적이다. 최근 유리 기판이나 광통신 관련 주가가 미래의 가치를 선반영하며 폭등하는 현상은 시장이 새로운 기술적 서사에 얼마나 굶주려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대감으로 주가가 오르는 것은 성장 기업의 특권이지만, 현실의 실적이 서사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 발생하는 낙차는 치명적이다. 픽션 노믹스의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때는 대중이 ‘속았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리더는 대중과 투자자가 품고 있는 환상의 크기를 영리하게 조율해야 한다. 서사가 허황된 거품으로 끝나지 않도록 과도한 기대를 적절히 통제하고, 내러티브의 단계별 이정표를 실물 성과로 증명해내는 정교한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셋째, 가짜 뉴스와 딥페이크 등 내러티브의 무기화에 대응하는 ‘방어적 스토리텔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발전은 누구나 정교한 허구를 순식간에 만들어 유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경쟁사나 악의적 세력이 조작한 단 한 줄의 부정적 서사가 기업의 평판을 무너뜨리고 시가총액을 증발시키는 일이 실제로 빈번하게 일어난다. 소문과 왜곡이 전염병처럼 번질 때, 통상적인 해명 보도자료와 사후 대처는 무력하다. 리더는 위기 상황에서 대중의 감정에 공감하고 논리적 오류를 단숨에 뒤집을 수 있는 강력한 ‘반박 서사’를 즉각 가동할 수 있어야 한다. 평소에 쌓아둔 두터운 신뢰의 서사만이 악의적인 가짜 서사가 침투할 때 기업을 지켜주는 단단한 방역망이 된다.
넷째, 내부 구성원들을 먼저 전염시키는 ‘인사이드 내러티브’를 강화해야 한다. 외부 시장을 향한 서사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기업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직원이 공유하는 이야기다. 리더가 제시하는 서사가 외부 치장용에 그치고 내부 구성원의 공감을 얻지 못할 때, 조직은 냉소주의에 빠진다.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 “우리의 기술은 인류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에 대한 명확한 내부 서사가 존재할 때 직원들은 단순한 노동자가 아니라 서사의 주인공으로서 몰입하게 된다. 특히 이직이 잦고 개인의 성장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에게 기업이 제공하는 비전의 서사는 연봉 이상의 강력한 인재 유지 동기로 작용한다.
결론적으로, 픽션 노믹스는 기업에 허황된 거짓말을 하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가치와 본질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해내는 지혜로운 경영을 의미한다. 숫자는 차갑고 딱딱하지만, 이야기는 따뜻하고 전염성이 강하다. 위대한 리더는 숫자를 나열해 사람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고, 가슴을 뛰게 하는 서사로 사람을 움직인다. 급변하는 거시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가치를 창출하려면, 리더는 스스로 최고의 이야기꾼이자 서사의 수호자가 돼야 한다. 기업의 운명은 결국 리더가 어떤 이야기를 경영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