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한국이 낳은 세계적인’으로 표현되는 예술인은 조수미가 유일하다. 40년 간 조수미가 우리나라 문화와 예술계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i>
1일 열린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6 삼성호암상 시상식’. 호암재단은 예술상 수상자인 소프라노 조수미의 선정 이유를 이렇게 썼다. 서양 클래식 음악계의 제왕이던 고(故)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으로부터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극찬을 받으며 등장한 조수미(64)는 지금도 음악을 넘어 세계의 평화와 대중과의 소통에 앞장 서고 있다.
시상식을 하루 앞두고 서울에 도착한 그를 만났다. 아르떼와의 지난 인터뷰 후 약 3개월 만이었다. 그 사이 조수미는 데뷔 40주년 기념 앨범을 냈고, SM클래식과의 전속 계약을 발표한 뒤 5월에만 네 번의 리사이틀을 열었다. 7월 열릴 ‘제 2회 조수미 콩쿠르’ 준비에도 여념이 없었다. 지난해 프랑스 문화예술훈장 최고등급 ‘코망되르’까지 전 세계의 상과 훈장을 휩쓴 그이지만 이번 호암상 수상은 조금 특별하다고 했다.
“음악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삶이 고단한 사람들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일까 늘 고민했습니다. 누군가는 클래식과 대중 사이에 다리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죠. 처음부터 모두에게 말러나 슈트라우스를 들려줄 수는 없지만, 음악으로 향하는 문을 조금 더 따뜻하게 열어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대의 크기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는데, 그런 고민의 시간을 알아준 것 같아서 감사할 뿐이죠.”
고독이 빚어낸 거장
그의 삶은 결코 화려한 무대 위 조명으로만 채워지지 않았다. 1983년 3월, 갓 스무 살의 조수미는 비 내리는 로마에 작은 가방 두 개를 끌고 홀로 도착했다. 낯설고 쓸쓸한 방 안에서 그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i> ‘어떤 고난 앞에서도 울지 않을 것. 약함과 외로움을 드러내지 말 것. 언어와 음악에 삶을 바칠 것.’</i>
“인터넷도, 연락도 자유롭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가족과 조국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된 채 견뎌야 했던 시간들이었죠. 하지만 그 외로움과 오랜 훈련의 시간이 오히려 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조수미의 음악적 여정은 언제나 시대를 앞서갔다. 1993년 한국인 최초로 그래미상(최고의 오페라 음반상)을 거머쥔 그는 클래식과 대중음악이 서로 적대시하던 시절, 과감히 장벽을 허물었다. 2000년대 초반 발매한 크로스오버 앨범 ‘온리 러브(Only Love)’는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국내 클래식 예술계에 충격을 던졌다.
예술 세계의 확장은 멈추지 않았다. 2014년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영화 '유스(YOUTH)'에 오페라 가수로 직접 출연했으며, 그가 부른 주제가 '심플 송 #3(Simple Song #3)'는 아카데미상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 이는 오늘날 K팝, K드라마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현실화된 '국제적 컬래버레이션'의 최초 경험을 제공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휠체어 그네와 보리밭… "조국이 더 강해져야 했다"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후에도 조수미의 중심에는 늘 ‘대한민국’이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귀국해 부모님을 껴안고 처음 한 말은 “보고 싶었어요”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더 강해져야 해”였다. 입국 심사대에서 북한인지 남한인지 묻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다진 결심이었다. 1994년 다국적 음반사 에라토(ERATO)와 계약할 당시 국제판 앨범 재킷에 우리 가곡 ‘보리밭’을 한글로 표기할 것을 관철시켰고, 지금까지 한국 국적을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무대 위 발음의 정확성을 끌어올려 한국 가곡의 전달력을 높인 것도 그의 빛나는 업적 중 하나다.
그는 이날 시상식에서 “1980년대 중반부터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나라와 도시를 오갔고, 낯선 공항에 도착할 때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은 삼성의 로고였다”며 “해외에서 활동하는 첫 한국인 예술가에게 그것은 단순한 기업의 이름이 아니라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이자, 타국에서 만나는 든든한 친구같은 존재였다”며 호암상 수상의 기쁨을 전하기도 했다.
조수미의 눈은 항상 사회의 낮은 곳으로, 더 넓은 곳으로 향했다. 2003년 유네스코 ‘평화예술인’으로 지정된 그는 전 세계 분쟁 국가 어디든 달려가 평화의 메시지를 목소리로 전했다. 유기동물 보호와 여성 인권을 위해서도 애써온 그다. 그의 호주에서 장애 아동들이 휠체어를 탄 채 탈 수 있는 그네를 본 후 감명받아 2014년부터 국내 장애인 복지시설과 특수학교에 ‘휠체어 전용 그네’를 수입해 기증해오고 있다. 국회에서 이른바 ‘조수미법’ 발의로 이어지며 현재 교육청, 국가기술표준원 등이 장애 아동 전용 놀이기구에 대한 안전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멈추지 않는 여정 '컨티뉴엄(Continuum)'
조수미는 지금도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다. 올해 4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음반의 제목은 '컨티뉴엄'.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하나의 흐름 안에서 이어진다는 의미이자 멈추지 않고 나아가겠다는 선언이다. 런던과 뉴욕 카네기홀 독창회를 마친 그는 올 하반기 빈, 베를린 등지에서의 공연과 마스터 클래스를 앞두고 있다. 오는 7월 프랑스에서는 제2회 조수미 국제 콩쿠르가 열리고, 8월부터는 한국 투어도 예정돼 있다.
“지금까지 무언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챕터 앞에 서 있는 듯한 설렘이 더 큽니다. 음악이 제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이번 수상을 통해 다시금 느낍니다. 한 줄의 문장, 한 번의 음악 공연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죠. 저 역시 존 서덜랜드의 노래를 듣고 성악가가 되기로 결심했으니까요. 앞으로도 그 장벽을 계속 무너뜨리는 데 앞장설 겁니다.”
스무 살 시절, 비 내리는 로마에서 썼던 다짐은 40년이 지난 지금 더 큰 메아리가 되고 있다. 긴 시간 조수미가 염원하던 꿈은 세 가지. 자신의 이름을 단 콩쿠르를 개최하고(사람), 자신의 삶을 주제로 한 뮤지컬을 제작하고(콘텐츠), 우리나라 땅에 자신의 이름을 단 콘서트홀이 생기는 것(공간). 무대 위 조명을 넘어 예술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온몸으로 증명해 내고 있는 조수미의 진정한 1막은 지금부터 시작일지도 모른다.
김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