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가정에 배달된 종이 선거공보물이 봉투째 폐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선거철마다 세금 수백억원이 투입되지만 상당수 유권자는 공보물을 읽지 않고 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시대에 종이 공보물 의무 발송 제도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뜯지도 않고 폐기
29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는 선거공보물이 담긴 봉투 수십 개가 개봉되지 않은 채 우편함 밑에 쌓여 있었다. 우편함에 꽂힌 공보물을 꺼내자마자 분리배출장으로 향하는 주민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직장인 이수진 씨(29)는 “공보물이 오자마자 바로 종이 배출하는 곳에 버렸다”며 “확인하지도 않는 공보물에 세금을 쓰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부산에 사는 어린이집 교사 최예나 씨(27)도 “인터넷으로 후보 정보와 공약을 다 확인할 수 있는데 굳이 종이로 인쇄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버리는 것도 일”이라고 했다.
종이 공보물 외면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지난 2월 26일부터 3월 31일까지 유권자 68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종이 공보물을 ‘자세히 읽는다’는 응답은 11.4%에 불과했다. ‘대충 훑어본다’는 52.2%, ‘읽지 않는다’ 17.5%, ‘봉투째 버린다’는 18.8%였다. 응답자 10명 중 9명은 공보물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셈이다. ◇전자화 논의 ‘하세월’선거철마다 공보물에 들이는 비용은 막대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제8회 지방선거 당시 제작된 후보자 공보물은 약 5억8000만 부였다. 제작비를 제외한 발송 비용만 세금으로 299억원이 투입됐다. 그해 치러진 대선에서는 관련 예산만 320억원, 지난해 21대 대선 때는 370억원이 편성됐다.
이번 지방선거 역시 등록 후보자가 7829명으로 4년 전보다 213명(2.8%) 늘어 공보물 제작·발송 규모도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4년 전과 같은 비용이 든다고 가정하고 후보자가 늘어난 만큼만 단순 계산해도 최소 307억원이다.
이 비용은 후보들의 공보물 제작비가 포함되지 않은 액수다. 후보들은 법정 선거비용 한도 내에서 자금을 모아 선거를 치르고, 국가가 선거 비용을 득표율에 따라 예산으로 보전해준다. 15% 이상 득표하면 전액, 15% 미만~10% 이상이면 절반이 보전된다.
일부 후보자는 비용 부담으로 공보물 분량을 줄이거나 QR코드로 공약을 대체하고 있지만 현행 제도는 여전히 종이 공보물 일괄 발송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문자메시지나 이메일을 활용한 전자공보물 도입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유권자 대상 설문에서 응답자의 82.7%가 전자공보물 도입에 찬성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하지만 제도 개선은 답보 상태다. 국회에는 전자공보물 도입과 재생 용지 사용 의무화 등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모두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전문가들은 종이 공보물을 전면 폐지하기 어렵다면 인쇄 분량을 줄이고 디지털 정보를 병행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김준모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보물 분량을 제한하고 QR코드로 상세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재활용이 쉬운 재질로 공보물을 제작해 환경 부담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리/이소이 기자 smart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