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무슨 화장이야. 로션이나 바르면 다행이지." 40대 직장인 김 과장은 그렇게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피부 좋아 보인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피부는 타고나는 것"이라고 넘겼다. 주변에서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비밀'이 있었다. 회의실을 나서다 박스에 발이 걸린 김 과장이 앞서 걷던 현 대리의 등에 얼굴을 파묻은 것이다. 외부 미팅을 앞두고 말끔한 양복을 입었던 현 대리의 재킷에는 희미한 살색 자국이 남았다. '원래 피부가 좋은 사람'의 흔적은 아니었다.
남성들 사이에서 이른바 '화장 아닌 화장'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과거 남성 화장품은 스킨과 로션 정도로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 톤업 제품 판매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기초 관리에만 머물던 남성용 제품이 피부 보정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30일 CJ올리브영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올리브영 내 남성 톤업 제품 매출은 연평균 약 93% 성장했다. 자연스러운 피부 표현과 간편한 자기관리 수요가 확대하면서 남성 고객들도 관련 제품을 일상적으로 찾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자연스러운 피부 표현과 간편한 자기관리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남성 고객 사이에서도 톤업 제품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기본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경쟁력 있는 K뷰티 브랜드와 협업해 다채로운 맨즈케어 상품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런 흐름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 한국 남성들 사이에서는 피부 잡티를 가리는 '컬러로션'이 인기를 끈 바 있다. 당시에도 화장보다는 '깔끔한 인상 관리'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다만 제품 기능은 지금과 달랐다. 피부와 색이 따로 놀거나 하얗게 뜨는 백탁 현상도 적지 않았다.
최근 제품들은 한층 정교해졌다. 남성 피부 특유의 붉은기와 피지, 모공 등을 고려해 자연스럽게 피부를 정돈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개인의 피부 톤에 맞춰 사용할 수 있도록 색상도 다양해졌다.
초점은 꾸민 티를 내지 않는 자연스러움. 과하게 덮지 않고 자연스럽게 단점을 줄여 '좋아 보이는 피부'를 만든다. 얇게 밀착되고, 여러 번 덧발라도 답답하지 않은 제형이 시장의 주류가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자외선 차단 기능을 결합한 톤업 선케어 제품이 늘어난 것 역시 같은 흐름이다.
남성들이 톤업 제품을 찾는 이유도 단순하다. 피부 톤을 균일하게 만들고 트러블과 붉은 기를 자연스럽게 보정하는 것만으로도 전체 인상을 한층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용법도 어렵지 않다. 로션이나 선크림처럼 소량 덜어 얇게 펴 바르면 된다. 자외선 차단 기능이 있으면 선케어 제품 대신 바를 수도 있다.
찾는 이가 늘면서 시장 규모 또한 점차 커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에 따르면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은 지난해 기준 약 1조2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글로벌 남성 그루밍 시장 역시 약 660억~670억 달러 규모로 평가되며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남성 메이크업이 점차 일상적인 자기관리 루틴의 일부로 확산하고 있다"며 "남성 메이크업에 대한 인식도 '꾸밈'보다 '깔끔한 인상 관리'로 이동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남성들에게 톤업 제품은 더 이상 생소한 영역이 아니다. '화장 같지 않은 화장'에 신경쓰는 남성들이 늘고 있다는 건 각종 수치가 말해준다. 그저 '화장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을 뿐이다. 무심하게 내뱉는 "타고났다"는 말 뒤에 생각보다 많은 관리가 숨어 있을지 모른다.
'아재가 될 것인가, 오빠로 남을 것인가.' 남성의 외모 관리가 일상적 소비로 확산하고 있습니다. 피부부터 패션과 헤어까지 '아재 탈출'을 위한 관심이 커지는 트렌드가 확연합니다. 선택에서 일상으로 바뀌고 있는 이 시대 남성들의 자기관리를 조명합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