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웨이퍼에서 시작한다…SK실트론이 5조 몸값 받는 이유[반도체 8대 공정]

입력 2026-06-02 04:12


SK그룹과 두산그룹이 기업가치 5조원 안팎으로 거론되는 SK실트론 인수·매각 협상에 나서면서 반도체 소재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거래는 다소 지연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딜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번 거래는 SK(주)가 보유한 SK실트론 지분 70.6% 매각을 중심으로 진행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보유한 29.4% 지분은 매각 대상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반도체 웨이퍼를 생산하는 기업이 거론되면서 시장의 관심이 집중되는 분위기다.

SK실트론의 모태는 LG실트론이다. 2017년 SK그룹이 반도체 수직계열화 전략의 일환으로 인수했다. 주력 제품은 PC, 스마트폰, 데이터센터 등에 활용되는 실리콘(Si) 웨이퍼다.

웨이퍼는 반도체 칩이 만들어지는 가장 첫 단계의 기판이다. 이후 모든 공정을 이 위에서 진행한다. 비유하면 건물을 짓기 전 깔리는 기초 바닥과 같다. 바닥의 완성도가 전체 구조의 안정성을 좌우하듯 웨이퍼 품질 역시 반도체 성능과 수율(웨이퍼에서 생산된 반도체 칩 중 정상적으로 동작하는 제품의 비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웨이퍼는 단순 소재가 아니라 정밀 공정 기술이 집약된 핵심 기초 소재로 평가된다.


웨이퍼 제조 공정은 크게 3가지다. 1단계는 잉곳(Ingot) 만들기다. 먼저 모래의 주성분인 이산화규소에서 산소를 떼어내어 반도체의 원료가 되는 실리콘(규소)을 추출한다. 반도체용 웨이퍼에는 일반 산업용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정밀 정제 과정을 거친 초고순도 실리콘을 사용해야만 한다.

이렇게 추출한 실리콘을 고온에서 정제해 불순물을 완벽히 제거한 후 다시 녹여 하나의 방향으로 결정을 성장시킨다. 그러면 길게 뻗은 원통형 결정 구조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잉곳이다.

잉곳이 끝나면 이를 아주 얇은 원판 형태로 잘라내는 공정을 거친다. 2단계다. 이 과정에는 초정밀 다이아몬드 절삭 장비를 사용한다. 웨이퍼를 균일한 두께로 절단해야 이후 미세 회로 공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량을 최소화할 수 있다.

잉곳의 지름(직경)은 완성될 웨이퍼 크기를 결정한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용도에 따라 150mm(6인치), 200mm(8인치), 300mm(12인치) 크기의 웨이퍼를 활용하고 있다. 웨이퍼의 지름이 넓어질수록 한 장당 찍어낼 수 있는 반도체 칩의 수량이 늘어나 생산 효율이 높아진다. 최근엔 AI 반도체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 확대에 따라 300mm 웨이퍼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3단계는 웨이퍼 연마 및 평탄화다. 절단을 마친 웨이퍼는 곧바로 반도체 공정에 투입하지 않는다. 절삭 과정에서 표면에 미세한 흠집과 굴곡이 생기기 때문이다. 웨이퍼는 연마 공정을 통해 표면을 극도로 평평하고 매끄럽게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특수 연마액과 정밀 장비를 활용해 표면을 거울 수준으로 다듬는 방식이다. 표면이 조금만 울퉁불퉁해도 미세 회로 형성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어 이 단계는 반도체 수율을 좌우하는 핵심 공정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웨이퍼 시장은 반도체 산업에서도 진입장벽이 높은 분야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되고 웨이퍼의 직경이 커질수록(대구경화) 결함을 최소화한 초고순도 실리콘 정제 기술과 초정밀 가공 역량이 필수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까다로운 기술 장벽으로 인해 글로벌 실리콘 웨이퍼 시장은 소수 기업 중심의 과점 구조가 굳어져 있다. 일본의 신에쓰화학이 압도적인 글로벌 1위를 달리고 있으며 그 뒤를 이어 일본의 섬코(SUMCO), 대만의 글로벌웨이퍼스, 독일의 실트로닉, 그리고 한국의 SK실트론 등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이들 상위 5개 기업이 전 세계 웨이퍼 공급량의 약 90%를 차지한다.

SK실트론은 고부가가치 시장인 300mm 웨이퍼 분야에서 글로벌 상위권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으로 평가된다. 최근 3년 연속 2조원 안팎의 매출을 기록하는 등 안정적인 실적 흐름도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물론 글로벌 파운드리 기업인 TSMC(대만) 등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다는 점 역시 강점으로 꼽힌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