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버스는 왜 ‘버스’가 되어야만 했나[천만의 동네]

입력 2026-05-30 19:52


[천만의 동네]를 시작하며
천만 명이 사는 도시는 너무 커서 한눈에 잡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동네’라는 작은 단위를 빌려왔습니다. 서울은 천만의 도시이자 25개 자치구와 수백 개 동(洞)의 집합. 거대함과 소소함이 한 몸에 들어 있는 곳입니다. 그 사이를 오가며 글을 쓰려 합니다.
시청에서 결정되는 정책의 뒷얘기, 자치구 골목에서 부딪히는 민원, 한강과 산자락 그리고 직장과 학교에서 만들어지는 시민들의 일상이 글의 재료가 될 겁니다. 거창한 도시론보다는 어느 정오 매진된 한강버스 매표소 같은 작은 장면에서 시작하는 글입니다. 서울시청 출입기자가 자리에 앉아 보고 들은 것들을 가능한 한 쉽게 풀어내 보려 합니다.
<첫회에만 들어갑니다>

5월 초 황금연휴 때 뚝섬 선착장으로 갔습니다. 한강버스를 타볼 작정이었습니다. 표를 끊으려는데 여의도 방면도 잠실 방면도 이미 두 시간치 자리가 다 팔린 뒤였습니다. 가장 빠른 자리가 세 시간 뒤. 결국 발길을 돌렸습니다. 빈 배로 다닌다던 그 한강버스가 맞나 싶었습니다.
생각해보면 한강버스만큼 시작부터 욕을 많이 먹은 사업도 드뭅니다. 작년 9월 정식 운항을 앞두고 시운전 도중 충돌 사고가 잇따랐습니다. 이후에도 강바닥에 걸려 승객들이 중간에 구조되는 사고가 이어졌습니다. 애초부터 배가 다닐 곳이 아니란 지적도 나왔습니다. ‘버스라고 부르긴 하지만 사실은 유람선 아니냐’, ‘왜 시민 세금으로 유람선을 띄우느냐’, ‘결국은 시장 치적용 아니냐’ 등. 6월 있을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비판은 더 거세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표가 매진됩니다. 이 모순은 어디서부터 비롯됐을까요.

◆대중교통이란 명분으로 출발
먼저 작명부터 되짚어 봅니다. 왜 하필 버스였을까. 한강을 가로지르는 수상 교통수단을 굳이 버스라 부른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결제. 대중교통으로 분류돼야 교통카드를 찍고 탈 수 있고 환승 할인도 가능합니다. 둘째는 명분. 시내버스, 지하철과 동급인 ‘교통’사업이어야 시 예산을 안정적으로 끌어오는 게 가능합니다. 셋째는 형평. 유람선이라 부르면 관광이 되고 관광이 되는 순간 일부의 여흥거리가 됩니다. 시민이 누리는 보편적 서비스라는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이름이 모든 걸 결정했습니다. 한강버스는 처음부터 대중교통으로 설계됐습니다. 마곡에서 잠실까지 7개 선착장을 잇는 노선, 평일 출퇴근 시간에도 운항하는 시간표, 시내버스의 두 배 남짓한 3000원 요금. 모두 대중교통이라는 정체성에 맞춘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출퇴근 수요는 미미했습니다. 한강 위 정류장은 강남이나 광화문 같은 핵심 업무지구에 닿지 않습니다. 배의 속도도 출근 시간에 맞추기엔 빠듯합니다. 정작 사람이 몰리는 시간은 따로 있었습니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오후 3~5시, 그리고 해 질 무렵. 한강버스는 출퇴근용 대중교통이 아니라 사실상 관광용 수상교통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연스레 따라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강버스는 지속 가능한가. 더 구체적으론 적자를 어떻게 메울 건가.
한강버스의 작년 감사보고서를 들여다봤습니다. 매출 약 54억원, 영업손실 94억원, 당기순손실 142억원. 감사를 맡은 한일회계법인은 보고서에 ‘계속기업 존속 능력에 중요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썼습니다. 자본잠식 상태이고 유동부채가 유동자산을 700억원 넘게 초과합니다. 부채 총액은 1500억원이 넘습니다.
또 하나 눈에 띈 건 매출 구성입니다. 54억원 가운데 정작 표를 팔아 번 운송수입은 2억원 남짓에 불과했습니다. 매출의 4%도 안 됩니다. 나머지 96%는 식음료(F&B), 임대, 광고에서 나옵니다. 회계 장부만 보면 한강버스는 사실상 식음료, 임대 회사에 가깝습니다. 운송수입원가는 51억원. 표 한 장 받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 표 수입의 24배가 넘습니다.
<<운영사 구조도 짚을 만합니다. 한강버스의 지분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51%, 이크루즈가 49%를 들고 있습니다. SH공사가 과반을 쥐고 있으니 사실상 서울시 자회사입니다. 그리고 이크루즈는 한강에서 오래도록 유람선을 운영해온 이랜드 계열사입니다. ‘유람선 아니냐’는 비판 앞에 선 이 사업의 한 축이 오래 유람선을 굴려온 회사라는 점은 시사적입니다.<br /> 사업기간은 운항 개시일로부터 20년으로 못 박혀 있습니다. 12척(하이브리드 추진체 8척, 전기 추진체 4척) 체제로 마곡~잠실 노선을 20년 동안 굴리겠다는 협약입니다. 시장이 바뀐다고 단번에 폐지하긴 쉽지 않습니다.>>

◆논란 속에도 손님 늘어
잘될까 하는 회의론 속에서도 손님은 늘고 있습니다. 작년 9월 정식 운항 이후 누적 탑승객은 26만7000명을 넘었습니다. 3월 한 달 6만2000명, 4월에는 7만6000명을 태웠습니다. 그리고 5월 황금연휴(5월 1~5일) 닷새 동안 2만3000명이 탔습니다. 일 평균 4689명. 4월 일 평균(2550명)보다 84% 늘었습니다. 5월 1일 하루에만 5584명을 태워 운항 이후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제가 뚝섬에서 발길을 돌렸던 것도 그래서입니다.
적자를 메울 답은 광고와 식음료에 있습니다. 벤치마킹 모델은 영국 런던 우버보트. 템스강을 다니는 이 수상버스는 우버와 장기 광고 계약을 맺고 배 전체에 우버 로고를 입혀 운영합니다. 서울시도 비슷한 길을 갑니다. 식음료도 큰 축입니다. 선착장 안에는 스타벅스, 테라로사, 시나본, 바이닐, BBQ, CU가 들어와 있습니다. 한강버스 이용객이 증가하면 이들 매장 매출이 늘고 운영사는 그 일부를 받습니다. 작년 한강버스 매출의 87%가 사실은 이 식음료와 상품 판매에서 나왔습니다.
또 하나 검토 중인 카드가 있습니다. 외국인 차등 요금입니다. 한국 시민에게는 지금처럼 3000원을 받되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더 높은 가격을 받자는 겁니다. 외국인 승객 대부분은 출퇴근 수요가 아닌 관광 수요입니다. 한강 야경과 도심 스카이라인을 보러 타는 이들에게 한강버스는 이미 유람선이고, 그렇다면 유람선 가격을 받아도 명분이 선다는 것입니다.
이 발상은 서울만의 것은 아닙니다. 베네치아는 당일치기 방문객에게 도시 입장료를 부과하기 시작했고 바르셀로나는 관광세를 올렸습니다. 일본 교토는 숙박세 인상에 들어갔고 태국과 인도네시아는 외국인 입국자에게 별도의 관광 부담금을 매깁니다. 전 세계 주요 도시가 오버투어리즘에 골머리를 앓으며 관광 수요에서 별도의 비용을 떼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가격을 둘로 쪼개는 건 단순한 요금 인상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시민에게는 대중교통, 외국인에게는 관광상품. 한 척의 배가 두 가지 정체성을 동시에 갖는 셈입니다. 대중교통이냐 유람선이냐의 양자택일이 아닙니다. 둘 다 인정하되 가격으로 분리하는 접근입니다.
운영 시간표도 손봅니다. 손님이 거의 없는 오전 10시 첫 배는 정오 무렵으로 늦추고 일몰 이후 야간 운항을 늘립니다. 출퇴근용이라는 명분은 사실상 접고 야경과 석양을 즐기는 관광용 수상교통으로 정체성을 옮기는 셈입니다.

◆지방선거 이후 정체성 확립
이런 일들이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강버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야심작입니다. 그는 서울의 가장 큰 자원으로 늘 ‘산과 물’을 꼽았습니다. 북한산, 인왕산, 관악산, 수락산이 도시를 둘러싸고 그 한가운데를 한강이 가릅니다. 한강변 아파트는 서울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이고 한강공원은 작년 한 해 8689만 명이 찾은 서울 최대의 생활 무대입니다. 그 한강을 더 활성화하겠다는 구상의 한 축이 한강버스였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치적 사업’, ‘세금 낭비’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합니다. 한강버스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기, 시민들은 표를 사려고 뚝섬 선착장 앞에 줄을 섭니다. 20년간 협약, 1500억원이 넘는 부채, 그리고 그것을 떠받치는 한강이라는 자원과 시민의 호기심. 그 어디쯤에서 한강버스는 무엇이 될지 결정될 겁니다.
한강버스가 출퇴근 대중교통으로 안착할지, 결국 관광용 수상교통으로 자리 잡을지, 시장이 바뀌며 모습이 또 달라질지는 아직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1000만 명이 사는 도시의 한가운데를 흐르는 거대한 강. 그 위에서 무언가 새로운 시도가 이뤄지고 있고, 시민들이 표를 들고 줄을 선다는 사실. 한강버스를 둘러싼 논쟁은 단지 배 한 척의 적자 문제가 아니라 ‘천만의 동네’가 어떤 도시 경험을 만들 것이냐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5월의 어느 정오, 매진 안내판 앞에서 발길을 돌리며 든 생각입니다.

<늘어나는 한강버스 승객 수>(단위 : 명)
2025년
9월/2만7541
10월/무승객 시범운항
11월/4만2952
12월/1만702

2026년
1월/8097
2월/1만5643
3월/6만2491
4월/7만6488

*자료: 미래한강본부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 jkah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