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90%가 스테로이드 복용…'도핑 올림픽' 연 美 약품 유통사

입력 2026-05-26 18:26
수정 2026-05-26 18:27
지난 24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스포츠의 금기를 깨는 행사가 첫선을 보였다. 참가자 모두에게 도핑을 허용한 채 치러지는 스포츠 대회 ‘인핸스드 게임(Enhanced Games)’이다.

이른바 ‘스테로이드 올림픽’으로 불리는 이 행사에는 수영과 육상, 역도 등 3개 종목에 42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이 중 36명이 경기력 향상 약물을 복용한 채 출전해 수영에서 세계 신기록이 나왔다. 주최 측에 따르면 출전 선수의 91%가 테스토스테론을, 79%가 인간성장호르몬을 사용했다. 세계 반도핑기구는 이를 두고 “위험하고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비판했지만 경기 온라인 생중계에 한때 6만 명이 동시 접속하는 등 흥행에 성공했다.

인핸스드는 자사 플랫폼에서 판매하는 테스토스테론 및 운동 보충제의 성과를 대중에게 홍보하기 위해 이 같은 행사를 주최했다. 정상급 선수들이 약물로 한계를 돌파하는 모습을 대중에게 보여주고, 그 광경에 자극받은 시청자들이 인핸스드 플랫폼에 접속하게 만드는 구조다.

이달 초 뉴욕증시에 상장한 인핸스드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서류에서 이 행사를 “브랜드 인지도 구축과 소비자 확보를 위한 수단”이라고 명시했다.

인핸스드에 밑천을 댄 건 실리콘밸리 거물들이다. 주요 후원자 중 한 명이 피터 틸 페이팔 창업자다. 틸은 오래전부터 수명 연장 치료에 관심을 갖고 관련 기업에 투자해 왔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의 벤처캐피털(VC)인 1789 캐피털도 투자자로 참여해 2025년 시리즈 B 투자를 주도했다.

12억달러의 기업가치로 상장한 인핸스드는 매출에 비해 기업 가치가 부풀려졌다는 비판으로 주가가 한때 공모가 대비 40% 하락했다. 인핸스드의 올해 1분기 순손실은 1640만달러에 달했다. 인핸스드 게임을 앞두고 기대감에 지난주 주가가 35% 반등하기도 했다.

인핸스드의 경영 환경은 미국의 정치적 환경과 맞닿아 있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끄는 MAHA(Make America Healthy Again·미국을 다시 건강하게) 진영이 각종 보건 규제에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어서다. 미 식품의약국(FDA는 4월 약 14종의 노화 방지용 펩타이드 약물의 합법화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김미리 기자 mirimi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