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주가 '360%' 폭등…삼전닉스 제친 '슈퍼乙' 9곳

입력 2026-05-26 17:55
수정 2026-05-27 00:12
국내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가 올해 주식시장에서 질주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인공지능(AI)발 ‘반도체 쇼티지’(공급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설비 투자를 큰 폭으로 늘릴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됐다. 독보적 기술력을 갖춘 일부 ‘슈퍼을(乙)’ 기업 주가는 ‘삼전닉스’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에 비해 공급처를 다변화하지 못한 일부 업체의 영업이익률은 한 자릿수에 그쳤다.

26일 한국경제신문이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반도체 소부장 기업 192곳을 전수조사한 결과 이들 업체 시가총액은 이날 기준 400조4459억원으로 지난해 말(158조2126억원)보다 153% 증가했다. 시총이 5000억원 이상인 소부장 기업은 84곳으로 지난해 말 61곳에서 23곳(38%) 늘었다.


증착 장비업체 주성엔지니어링 주가가 올해 8.5배 뛰며 가장 많이 올랐다. 기판 검사장비업체 기가비스와 본딩와이어업체 엠케이전자도 각각 4배 이상 뛰었다. 올 들어 SK하이닉스 주가 상승률(215%)을 앞지른 소부장 업체는 9곳으로, 평균 주가 상승률이 359%에 달했다. 삼성전자 상승률(149%)을 앞지른 소부장 업체는 19곳이다. 이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은 91%, 코스닥지수는 26.7%였다.

전문가들은 미세 공정 기술이 한계에 부닥치자 반도체 칩을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발열을 줄이는 첨단 패키징업체가 빠르게 성장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기술을 기반으로 2차전지, 태양광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 기업도 주목받았다. 반도체 증착 기술을 활용해 고효율 탠덤 태양전지 시장에 뛰어든 주성엔지니어링이 대표적인 사례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은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할 수 있도록 민관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첨단 패키징이 핵심"…대덕전자 주가 1054%·티엘비 643% 질주
반도체 공급망 대해부…뜨는 강소기업지난해 반도체 업황이 살아나자 원익IPS, 유진테크, 브이엠 등 회로 미세화와 관련이 깊은 전(前)공정 장비업체의 주가가 먼저 반응했다. 올 들어선 반도체 후공정에서도 특히 첨단 패키징 공정 기술을 다루는 기업 주가가 급등하고 있다. 미세 공정 기술이 한계에 부닥치자 반도체 칩 간 효율적인 연결과 수율을 좌우하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가 주목받는다는 분석이 나온다.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해외 시장 또는 연관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는 업체는 상당 기간 주가가 우상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차세대 기판·검사 공정 부상26일 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시장의 관심이 가장 집중된 분야는 기판업체다. 인공지능(AI) 서버와 데이터센터, 자율주행차 등에 장착되는 고사양 반도체용 패키징 기판(FC-BGA)을 생산하는 업체의 주가가 고공행진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올 들어 주가가 6배 이상 뛰었다. 삼성전기는 FC-BGA 공급 부족 사태가 확산하자 대규모 추가 투자를 단행했다. 연내 AI용 기판 시장에서 세계 1위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FC-BGA 매출 비중이 큰 대덕전자는 올해 주가가 259% 올랐다. 생성형 AI로 수요가 급증하는 고성능 서버용 기판 등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비에이치(150%), 코리아써키트(128%), 티엘비(121%) 등 다른 PCB 제조사의 주가도 올 들어 2배 이상 뛰었다. 이들 기업의 주가 상승 배경엔 최근 실적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기대도 있다. 에픽AI에 따르면 비에이치와 코리아써키트의 내년 매출은 각각 2조원을 넘어선다. 티엘비는 올해(3533억원)보다 20% 넘게 늘어난 4274억원의 매출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부문에서도 AI 반도체와 산업용 수요 급증으로 공급 부족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기판 검사 장비 업체인 기가비스까지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기판 업체에 대한 시장의 기대는 지난해부터 커졌다. 대덕전자 주가는 지난해 5월 26일부터 이날까지 최근 1년간 1054% 급등했는데, 올 들어서만 259% 올랐다. 코리아써키트와 티엘비도 같은 기간 각각 994%, 643% 급등했다. 최근 1년간 가장 많이 오른 종목은 삼성전기로 주가가 1198% 뛰었다. SK하이닉스(911%)와 삼성전자(447%)를 앞섰다. ◇본딩·테스트, HBM 수혜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시대가 열리면서 칩을 정밀하게 붙이는 본딩 장비도 핵심 병목 구간으로 떠올랐다. 열 압착(TC) 본더를 넘어 하이브리드 본더 제품군까지 보유한 한미반도체에 자금이 몰린 배경이다. PCB 하부에 적외선 레이저를 쏘는 레이저 본더를 개발한 프로텍도 시장의 관심을 받았다. 본딩 공정을 2~3초 만에 끝내 PCB 휨 현상을 최소화할 수 있어서다.

패키징 구조가 복잡해지고 칩 간 연결 부위가 늘어나면서 기판과 칩 등을 정밀하고 안정적으로 이어주는 기술을 갖춘 업체도 몸값이 수직상승했다. 반도체 칩과 외부 회로를 전기적으로 연결하는 소재인 본딩 와이어를 생산하는 엠케이전자는 올해 주가가 4배 넘게 올랐다. 반도체 칩과 기판을 잇는 접합 소재 솔더볼을 생산하는 덕산하이메탈도 올 들어 주가가 192% 상승했다.

피에스케이홀딩스에 대한 기대도 확산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첨단 패키징 기술인 칩 온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CoWoS)에 관련 장비를 공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스트 기술도 AI 시대 핵심 인프라로 꼽힌다. AI 반도체는 구조가 복잡하고 동작 속도가 빨라 테스트 난도가 높은 데다 칩 생산량 자체가 늘면서 검사 장비와 부품 수요가 급증해서다. 프로브카드와 인터페이스 보드, 테스트 소켓 등을 생산하는 티에스이가 대표적이다.

전공정 장비 업체도 AI 시대 흐름에서 비켜간 것은 아니다. 공정이 길고 복잡해지면서 증착 장비업체 테스, 감광액(PR) 제거 장비업체 피에스케이, 원자층 증착(ALD) 기술력을 기반으로 차세대 태양전지인 페로브스카이트 분야까지 진출한 주성엔지니어링 등에 대한 기대가 많다. 생산라인 증설이 본격화하면서 클린룸 설비를 공급하는 신성이엔지 시가총액도 급증했다. ◇유리 기판·광통신·냉각 기술 주목시장에선 첨단 패키징 중심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특히 차세대 인쇄회로기판(PCB)으로 꼽히는 유리 기판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성현 오픈엣지테크놀로지 대표는 “칩셋 기반 패키징 구조가 확대될수록 유리 기판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칩셋은 기존 칩의 기능을 잘게 나눈 뒤 다시 하나의 패키지로 묶는 기술이다. 웨이퍼 절단(다이싱) 기술도 차세대 수혜 분야로 거론된다. HBM 단수가 높아질수록 웨이퍼가 얇아져 이를 정밀하게 절단하는 기술력이 중요해져서다. 관련 장비 업체인 이오테크닉스 등이 주목받는 이유다. 정밀 세정 기술을 갖춘 제우스 등도 수혜가 예상된다.

업계에선 AI 반도체 경쟁이 ‘칩 성능’에서 ‘칩 간 연결’로 넘어가면서 구리 선 대신 빛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실리콘 포토닉스가 새 병목 기술로 떠오를 것이란 전망이 많다. 실리콘 포토닉스 기반의 초고속 광트랜시버 설계 기술을 갖춘 오이솔루션 등이 거론된다. 브라이언 강 노틸러브벤처스 대표는 “그래픽처리장치(GPU) 간 데이터 전송 지연으로 인한 연산 효율 저하를 해결할 대안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냉각 기술도 AI 시대 핵심 인프라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의 공기 냉각 방식만으로는 고밀도 GPU 서버의 발열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창욱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매니징디렉터는 “냉각 성능이 좋아질수록 더 많은 GPU를 고밀도로 배치할 수 있다”며 “냉각 기술은 반도체 성능만큼 중요한 인프라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식/강해령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