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당산동에서 식음료(F&B) 기업을 운영하는 A 대표의 책상엔 노트북 세 대가 동시에 켜져 있다. 챗GPT, 제미나이, 젠스파크 등 세 종류의 인공지능(AI) 에이전트가 각기 다른 업무를 처리하는 중이다. 새로 연 매장의 인테리어 시안도 AI가 만들었다. 이전엔 3차원(3D) 모델링 시안 세 장을 외주에 맡기는 데 100만원이 들었지만, 지금은 월 구독료 10만원이면 된다. 경영 전략 수립부터 콘텐츠 기획, 디자인, 시장 조사까지 두 명의 팀장과 함께 처리한다. A 대표는 “이제는 AI에 어떻게 일을 시킬지 설계하는 게 핵심 업무”라고 말했다.
이른바 ‘AI 에이전트 모멘트’가 펼쳐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마케터, 자영업자, 게임 개발자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AI를 동료처럼 부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글로벌 빅테크는 직원을 줄인 자리에 AI 에이전트를 투입하고, 그렇게 확보한 자금을 다시 AI 인프라에 쏟아붓고 있다. ◇ 월 30만원 AI가 사무실·가게 책임져그동안 AI 챗봇은 질문에 답하고 글을 쓰는 데 그쳤다. AI 에이전트는 사람이 목표를 주면 계획을 세우고 도구를 골라 외부 시스템을 조작한다. 결과가 나오면 스스로 방향을 수정한다. 단순한 도구에서 ‘디지털 직원’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AI의 능력을 측정하는 벤치마크(SWE-벤치)에서 1년 전 4.4%였던 정답률은 지금 70%를 넘는다.
기업들 사이에선 “월 20만~30만원짜리 AI 에이전트 계정 하나가 연봉 5000만원 직원을 대체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맥킨지앤드컴퍼니에 따르면 AI를 업무에 활용하는 기업 비율은 2023년 55%에서 지난해 78%로 뛰었다.
포스코DX는 지난 2월부터 AI를 인적 자원처럼 관리하고 있다. 성과가 좋은 에이전트엔 더 큰 권한을 주고, 미흡하면 재교육하거나 다른 업무로 전환한다. 현재 운영 및 개발 중인 에이전트는 110개. 재무팀은 AI 도입만으로 업무량의 80%를 덜어냈다. LG유플러스도 지난해 10월 생성형 AI 상담 시스템으로 10단계 절차를 4단계로 줄여 전체 응대 시간을 60% 단축했다.
미국 스탠퍼드대·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진이 상담원 5000여 명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AI를 활용한 상담원은 시간당 14% 더 많은 문제를 해결했다. 저숙련 상담원의 개선 폭은 34%에 달했다. 김명주 서울여대 지능정보보호학부 교수는 “AI 에이전트의 등장으로 10명이 하던 일을 2~3명이 할 수 있게 됐다”며 “인력 규모보다 AI 활용 역량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자영업 현장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 창천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B씨는 1000만원이 드는 외주 대신 ‘클로드 코드’로 웹 주문 시스템을 직접 구축했다. 부산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C씨는 챗GPT·클로드를 자동화 도구 ‘메이크’에 연동해 배달 주문과 판매시점관리(POS) 매출을 매일 자동 리포트로 받아본다. 카카오 채널 단순 문의도 클로드가 1차 응대하면서 하루 20~30건의 반복 문의 중 사람이 손대는 비중이 10% 이하로 줄었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월 “AI 덕분에 한 사람이 수십억 달러 규모 기업을 만드는 ‘1인 유니콘’ 시대가 머지않았다”고 했다. ◇ AI가 일자리 대체…감원 부메랑도AI 에이전트 확산의 이면엔 그늘도 드리우고 있다. 지난 3월 말 정리해고를 통보받은 오라클 직원은 타임지에 “우리는 우리를 대체할 AI를 훈련시키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오라클은 다음달까지 전체 인력의 20%인 3만 명을 내보낸다. 직원들의 컴퓨터 업무 과정을 AI에 학습시킨 메타는 약 8000명 감원을 예고했고, 아마존도 지난해 10월부터 석 달간 본사 직원 3만여 명을 줄였다. 아마존이 지난달 공개한 공급망 관리 에이전트 ‘커넥트디시전스’와 채용 에이전트 ‘커넥트탤런트’는 모두 고연봉 직원이 맡던 업무다. 지난 1분기 실리콘밸리에서 타의로 직장을 떠난 사람은 8만 명을 넘었다. 산업연구원(KIET)은 국내 327만 개 일자리가 AI로 대체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컴퓨팅 비용이 빠르게 떨어지면서 가속화되고 있다. 에포크AI에 따르면 2023년 3월 GPT-4의 토큰 100만 개 가격은 37.5달러였지만 이듬해 7월 비슷한 성능의 메타 라마3.1-인스트럭션 8B는 0.1달러로 375분의 1 수준이 됐다. 빅테크는 감원으로 확보한 자금을 다시 AI 인프라에 쏟는다. 메타는 올해 설비 투자에 3년 전의 5배인 1250억~1450억달러를 쓰고, 오라클은 오픈AI와 5000억달러 규모 ‘스타게이트’를 추진한다. 미국 4대 빅테크가 올해 AI 인프라에 예고한 투자액만 7000억달러(약 1038조원)에 달한다. 비노드 코슬라 코슬라벤처스 창업자는 “공장 노동자, 소매업 종사자, 회계사 등 모든 직종의 노동 가치가 0에 수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