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주적 누구냐"…지방선거판 달군 '안보 논쟁' [이슈+]

입력 2026-05-23 15:46
수정 2026-05-23 15:57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대한민국의 주적이 누구냐'는 질문을 둘러싼 공방이 벌어졌다. 박민식 국민의힘 후보와 한동훈 무소속 후보는 하정우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해당 질문에 답을 피했다며 일제히 비판했다. 최근 지방선거 현장에서 유권자들이 후보자에게 직접 '주적'을 묻는 영상까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확산하는 가운데, 30년 넘게 반복돼온 안보관 논쟁이 올해에도 또 한 차례 떠오르는 모양새다.박민식·한동훈, 하정우 겨냥 협공박 후보는 23일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의 주적이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천안함과 연평도의 눈물을 단 한 번이라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휴전선에서 밤낮없이 피땀 흘리는 우리 청년 군인들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단 1초도 머뭇거릴 수 없는 지극히 당연한 질문"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하정우 후보는 명료한 대답을 회피하고 도망쳤다"고 주장했다.

박 후보는 "하 후보의 안보관은 완전히 파탄 났다"며 "어떻게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자가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핵무장 집단 '북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못 하면서, 북구의 미래를 맡고 대한민국 국회의원을 꿈꾼단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국민을 적과 아군으로 편 가르고, 국민을 주적으로 모는 전체주의적 정치인은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될 자격도, 북구 주민을 대표할 자격도 없다"고 했다. 박 후보는 "하 후보는 비겁하게 다른 말로 돌려막지 말고, 북한이 주적인지, 대한민국 국민이 주적인지 북구 주민들 앞에 당당하게 밝혀라"고 촉구했다.

한 후보도 같은 사안을 문제 삼았다. 그는 페이스북에 "민주당 정치인들은 북한을 주적이라고 하면 대화를 못 하니 북한이 주적이 아니라고 한다"며 "하정우 민주당 후보도 같은 생각이냐"고 적었다. 한 후보는 "주적이 어디냐는 대한민국 공직자라면 즉답해야 할 질문을 회피하던데 하 후보는 자기 생각이란 것이 없습니까?"라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원래 대화와 협상은 '적'하고 하는 것"이라며 "북한은 압도적 군사력과 국력으로 누르고 대화와 협상도 해야 하는 우리의 분명한 주적"이라고 강조했다."주적 누구?" 묻는 유권자들 최근 지방선거 국면에서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에게 '대한민국의 주적이 누구냐'고 묻는 장면이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확산하고 있다. 후보의 안보관을 짧은 질문으로 확인하려는 콘텐츠가 선거 현장의 또 다른 검증 방식처럼 소비되는 분위기다.

인천시장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비슷한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16일 인천 서구에서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인천시장 후보는 주적을 묻는 한 학생의 질문에 "내란세력 아니에요?"라고 반문했다. 이에 유정복 국민의힘 인천시장 후보 측은 "북한이라는 진짜 주적은 감추고 국민에게 화살을 겨눈 것"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시장 선거 현장에서도 유사한 장면이 있었다. 유튜브 채널 '정치타파 TV'에 공개된 영상에서 고재현 국민의힘 성동구청장 후보는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에게 "대한민국의 주적은 누구냐"고 물었다. 정 후보는 별도 답변 없이 자리를 떠났고, 같은 질문을 받은 고 후보는 "북한"이라고 답했다.

이런 논쟁은 가장 최근인 새 정부 1기 내각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쟁점이 된 바 있다. 당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후보자,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등이 '북한이 우리 주적이냐'는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명확한 동의를 유보하거나 다른 표현을 쓰면서 공방이 이어졌다.

반면 안규백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우리 주적은 북한"이라고 답했고, 정성호 법무부 장관 후보자도 "북한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크게 논란이 됐던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7년 19대 대선 당시 열린 대선후보 초청 TV 토론회가 꼽힌다.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북한이 주적이냐'는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질문에 "그런 규정은 대통령으로서는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한 바 있다.

북한군을 '주적'으로 규정하는 개념은 1994년 남북 특사교환 실무접촉에서 북측 대표 박영수가 "전쟁이 나면 서울이 불바다가 된다"고 위협한 발언을 계기로, 1995년 국방백서에 처음 명기됐다. 이후 2000년까지 해당 표현이 유지되다가, 2003년 국방백서에서 주적 문구가 삭제되었고, 2004년 백서부터는 '직접적 군사 위협'이나 '현존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 등으로 표현이 변경됐다.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계기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적'이라는 표현이 다시 담겨 박근혜 정권까지 유지됐으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8년과 2020년 국방백서에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는 표현이 빠졌다. 당시에는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는 문구로 대체됐다. 이어 2022년 윤석열 정부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적'으로 규정한 표현(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 다시 쓰였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