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일자리 다 뺏길라"…AI 향한 인간 '반격' 시작됐다

입력 2026-05-23 06:00
수정 2026-05-23 07:09
미국 캘리포니아주가 인공지능(AI)발 대량 해고에 대응하기 위해 ‘인간 고용 보조금’ 지급을 검토한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주지사는 21일(현지시간) AI에 따른 노동시장 혼란에 대비해 퇴직금 기준과 실업급여, 인재 교육 등 정책 방안을 연구하도록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연구 대상에는 기업이 AI를 활용하는 대신 기존 직원을 계속 고용하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일자리 나누기’로 AI로 인한 고용 감소에 대처할 수 있는지도 연구 대상이다. AI 때문에 실직한 근로자에게 일시적으로 현금을 지원하는 등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방안도 살펴볼 예정이다. 고객 서비스 담당자와 소프트웨어 개발자 등 AI 도입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분야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늘리는 것도 검토한다. AI 등의 영향을 받는 근로자와 기업이 경제적 이익을 더 폭넓게 공유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빅테크가 몰려 있는 캘리포니아는 AI발 해고 바람이 집중되는 지역이다. 메타는 지난 20일 전체 인력의 10%(약 8000명)를 한꺼번에 줄인다고 발표했다.美, AI發 일자리 공포…청년 70% "취업 위협"
뉴섬 주지사 "AI 안전장치 부족"개빈 뉴섬 미국 캘리포니아주지사가 21일(현지시간) 서명한 행정명령은 급진적 성격이 크다. 인공지능(AI)발 고용 충격에 대응해 근로자가 기업 경영권에 관여하는 내용까지 연구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만큼 AI발 실직 공포가 확산하는 데 따른 것이다. AI 확산으로 새로운 형태의 포퓰리즘 정책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뉴섬 주지사는 기존 일자리 안전망으로는 AI 한파에 맞설 수 없다고 주장한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그는 최근 연설에서 “기업이 AI로 막대한 부를 축적할 것”이라며 “급여에서 세금을 떼는 현재 제도는 고용 감소로 계속 유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실업보험과 전통적 안전장치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모든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 자본’ 검토도 지시했다. AI를 활용해 부를 생산하는 원천인 자본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뿌리부터 뒤흔드는 주장이지만 AI발 대량 해고가 이어진다면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 차기 대선을 노리는 뉴섬 주지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차별화된 선명성 경쟁을 위해 ‘좌클릭’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특히 AI 한파 불안을 가장 크게 느끼는 청년에게 AI를 규제하고, 이로 인한 이익을 나눠 갖자는 정책은 인기를 끌 가능성이 높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정치연구소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 대학생 약 70%는 AI가 취업에 위협이 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지난 18일 공개된 뉴욕타임스(NYT) 여론조사에서도 30대 미만 유권자 47%가 AI를 “대체로 나쁘다”고 평가했다.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수치다.

최근 대학 졸업식에서는 축사를 하러 나선 기업인이 AI 혁신을 언급했다가 곤욕을 치르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에릭 슈밋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15일 애리조나대 졸업식장에서 “어떤 길을 택하든 AI는 일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했다가 박수는커녕 쏟아지는 야유를 감내해야 했다. 지난달 샘 올트먼 오픈AI CEO 자택이 두 차례에 걸쳐 공격당하는 일이 발생하자 SNS에서 습격자에게 오히려 동조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AI 이슈는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예정이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의 3월 조사에 따르면 미국 공화당 지지자의 63%, 민주당 지지자의 67%가 “AI 기업이 해를 끼치지 않도록 연방정부가 더 강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브래드 카슨 전 민주당 하원의원은 “정치인이 이제야 AI 안전장치에 대한 여론이 얼마나 거센지 깨닫고 있다”며 AI가 선거 화두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AI로 인한 실직 공포가 과장됐다는 평가도 잇따른다. 최근 미국 실업률은 4%대 초반으로 높은 수준은 아니다. 미국 노동통계국은 법률 관련 분야 등 AI에 노출되는 산업을 포함하더라도 2034년까지 미국 내 일자리가 520만 개 늘 것으로 전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로버트 고든 노스웨스턴대 교수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기술 변혁이 단기간에 대규모 실업을 일으킨 사례는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중국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을 것”이라며 AI 관련 일부 규제를 도입하는 행정명령에 대한 서명을 거부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김미리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