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 언제 키우나"…日 '100년 고용철학' 흔든 AI

입력 2026-05-22 18:04
수정 2026-05-23 00:53
‘신입 공채 및 정년 보장’을 골자로 1929년 정립된 일본식 고용 모델이 약 100년 만에 변화를 맞고 있다. 일본 대기업이 일제히 신입 채용 축소와 경력직 확대에 나서고 있어서다. 인구 감소, 저성장이 이유로 지목되지만 가장 큰 요인은 인공지능(AI) 활용 확대다. ◇급감하는 신입 채용 22일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일본에서 2040년까지 약 200만 명의 일자리가 AI로 대체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무직 일자리는 55%가 사라질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신입사원 채용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조사에 따르면 올해 구인 계획이 있는 1270개 기업 중 50.3%가 신입 대신 경력직 채용을 준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력직 채용 비중이 절반을 넘은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일본 최대 에너지 기업 에네오스는 올해 사무직과 정보기술(IT) 기획 직무에서 신입 채용을 중단했다. 건설사 다이와하우스는 올해 신입 채용을 672명에서 182명으로 약 73% 줄였다. 기계 업체 구보타도 대졸 채용을 70% 축소했다. 기타오 요시타카 SBI홀딩스 회장은 “정말 우수한 인재가 아니면 채용하지 말라고 인사부에 지시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는 신입사원이 맡아온 자료 정리, 보고서 초안 작성, 데이터 분석 보조 등 사무 업무가 AI로 빠르게 대체되는 데 따른 결과다. 채용 담당자 사이에서는 “굳이 신입을 채용한 뒤 오랜 시간을 들여 키울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변화 맞은 ‘가족 같은 회사’신입 공채는 파나소닉(옛 마쓰시타전기산업) 창업자이자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구축한 일본식 경영 모델의 핵심이다. 마쓰시타전기는 1929년 대공황으로 생산이 축소되는 와중에도 직원 고용을 유지하며 성장을 이끌어냈다. 신입을 채용한 뒤 종신 고용을 보장하며 순환 배치를 통해 회사 자산으로 만드는 경영 방식이다. 이를 통해 조직 철학을 내재화한 숙련 인력은 1970~1980년대 고도성장을 이끈 핵심 경쟁력이었다.

최근 일본 기업은 처음부터 필요한 직무 역량을 갖춘 인재를 선별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다이와하우스는 AI 면접을 도입해 바로 현장 투입이 가능한지 살피는 ‘사회인 기초력’을 평가한다. 비즈니스 과제를 즉석에서 해결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AI 케이스 면접도 운영 중이다. ‘지원 동기’ 항목은 아예 뺐다. 일본식 취업 문화의 핵심이던 충성심과 회사를 향한 열정이 AI 시대에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구직자 인식도 바뀌고 있다. 종신 고용보다 이직을 통해 자기 능력을 검증받고 연봉을 높이려는 젊은층이 늘고 있다. 일본 총무성 조사에 따르면 2025년 4분기 이직 희망자는 1045만 명으로 코로나19 전인 2019년 4분기 대비 20% 증가했다. 유튜브와 인터넷에선 전통적 조직문화를 지키려는 일본 기업을 ‘JTC’(Japanese Traditional Company·꼰대 기업을 의미)라고 비꼬는 것이 밈으로 자리 잡았다.

니혼게이자이는 “AI 시대 도래가 일본 기업의 고용 철학 자체를 바꾸기 시작했다”며 “‘가족 같은 회사’에서 ‘선별된 전문가 조직’으로 이동하는 과도기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