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칸] 자유와 욕망 다룬 애니메이션...방구석 1인 제작자, 칸을 홀리다

입력 2026-05-22 18:35
수정 2026-05-22 18:36
칸 국제영화제 라 시네프(La Cinef) 부문에 초청된 애니메이션 <새의 랩소디(Bird Rhapsody)>를 연출한 최원정 감독은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 졸업생으로, 이번 작품을 사실상 혼자 완성했다. 음악 편집과 사운드 디자인까지 모두 직접 맡았다.

칸 현지에서 만난 최 감독은 "제일 예상하지 못했던 영화제가 칸이었다"며 수줍게 웃었다. "영화제를 몇 군데 지원했는데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게 칸이었어서, 연락받았을 때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그다음엔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죠. 세계 가장 큰 영화제에서 각국 사람들에게 제 영화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너무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했거든요."

최 감독은 2002년생, 이른바 '코로나 학번' 세대다. 대학 입학 직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학교 수업과 교류 대부분이 비대면으로 전환됐고, 캠퍼스 경험 역시 제한됐다. 그는 학교 내 3D 애니메이션 소모임 활동을 계기로 애니메이션 작업을 시작했지만, 실제 공부와 연습은 대부분 집에서 이루어졌다고 설명했다.

"학교 들어가자마자 3D 소모임에 들어갔는데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 안 가게 되면서 집에서 3D를 계속 연습하게 됐어요." 이러한 환경은 자연스럽게 1인 제작 중심의 작업 방식으로 이어졌다. <새의 랩소디>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완성한 작품이다.

"혼자 작업하면 메시지를 명확하게 가져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길을 잃지 않게 되거든요. 물론 여러 명이 하면 더 높은 퀄리티를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생각해요. 가장 좋은 건 여러 사람과 작업하면서도 의도한 방향대로 만들어지는 거겠죠."



칸 측으로부터는 특히 음악 사용 방식에 대한 좋은 평가를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작품은 전자음향과 클래식 음악의 질감을 독특하게 혼합하고 있는데, 이 역시 감독 혼자 작업했다.

"원래 쓰고 싶었던 음악이 있었는데 저작권 문제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무료 클래식 음원들을 직접 편집해서 하나의 음악처럼 만들었어요. 사운드 효과랑 배경음악도 다 직접 작업했고요."

그는 영화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고 감동받는 이유의 절반 이상은 음악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음악의 힘을 굉장히 크게 믿는 편이에요." 좋아하는 음악가로는 류이치 사카모토를 꼽았다.



<새의 랩소디>는 단순한 서사 중심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 인간 존재와 욕망, 자유를 탐구하는 철학적 이미지의 흐름에 가깝다. 최 감독 역시 학부 시절부터 철학적 주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예전 작업들은 세상의 순환 같은 굉장히 추상적이고 거대한 담론이 많았어요. 그런데 졸업작품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인간이라는 주제로 들어가고 싶었어요."

작품에는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의 영향도 짙게 배어있다. 특히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1897~1898)'에서 강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 그림은 인간의 삶 전체가 긴 화면 안에 담겨 있거든요. 저도 그런 작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인간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작업이요."



최원정 감독은 결국 인간을 이루는 핵심을 "자유와 욕망"이라는 두 단어로 정리했다. 그리고 이것을 중심으로 작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제목에 사용된 '랩소디(Rhapsody)' 역시 작품 구조와 연결된다. "랩소디는 규칙 없이 자유롭게 변주되는 음악 형식이잖아요. 제 작업도 명확한 사건 중심 이야기라기보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흐름이 중요했어요. 갑자기 휘몰아쳤다가 다시 잔잔해지고. 그래서 랩소디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작품 속 '새'에 대한 감독의 생각도 밝혔다. "저는 새를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각자의 욕망과 욕구로부터 조금 해방돼서 진정한 자유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새의 랩소디'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랩소디'이기도 해요."




작품은 시각적 질감이 유난히 눈에 띈다. 유화 같은 두꺼운 마티에르, 흑백 연필 드로잉, 컬러와 흑백의 반복적 전환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원래부터 다양한 회화적 질감을 실험해보고 싶었어요. 작품은 크게 3막 구조인데 1막과 3막은 컬러이고, 2막은 연필 질감의 흑백이에요. 질감이 계속 변하면서 순환하는 느낌을 만들고 싶었어요."

칸 초청 이후 진로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칸 오기 전까지는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서 돈 버는 데 집중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그런데 여기 오고 나니까 조금 더 작업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 하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그는 "장편일 수도 있고 단편일 수도 있고, 꼭 영화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형태와 상관없이 계속해서 '삶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최원정 감독은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의 가장 큰 장점으로 자유로운 상상력을 꼽았다. "실사는 현실 안에서 구현해야 하는 제약이 있는데 애니메이션은 상상한 걸 그대로 표현할 수 있어요. 저한테 애니메이션은 약간 '움직이는 회화'에 가까워요."

좋아하는 작품으로는 디즈니 초기 장편 애니메이션과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들을 언급했다. 최근에는 영화 <플로우(Flow)> 감독 인터뷰를 인상 깊게 봤다고도 말했다.

칸 현장에서는 세계 각국 학생 감독들의 작품을 보며 많은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아시아권 감독들이랑 다른 나라 감독들이랑 감성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굉장히 신선했고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었어요". 다만 영화제 기간에 정작 애니메이션 산업 자체에 대해 깊은 대화를 많이 나누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고 덧붙였다.

관객 해석에 대해서는 열린 태도를 보였다. "저는 관객이 어떻게 봤는지를 먼저 듣는 걸 좋아해요. 일부러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고 만들거든요."



현재 최원정 감독은 더 많은 사람에게 작품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다른 영화제 출품도 준비 중이다. 향후 작업은 지원사업 등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경쟁이 치열해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현실적인 고민도 덧붙였다.

칸에서 꼭 해보고 싶은 일을 묻자 그는 잠시 웃으며 말했다. "폐막식을 꼭 보고 싶어요. 그리고 박찬욱 감독님도 실제로 한번 뵙고 싶어요."

라 시네프(La Cinef)는 전 세계 영화학교 학생들이 만든 중·단편 영화를 소개하며 차세대 영화인을 발굴하는 칸영화제의 공식 경쟁 부문이다. 올해 29회를 맞은 이 부문에는 전 세계 영화학교에서 출품된 2,750편 중 실사 14편, 애니메이션 5편 등 총 19편이 본선에 올랐다.

2002년생, 코로나 학번, 혼자 완성한 졸업작품. 어느 것도 칸과 어울리는 수식어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최원정 감독은 바로 그 조건들 안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한국의 젊은 영화인들이 라 시네프 무대에서 꾸준히 이름을 알리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큰 영화제가 다시 한번 한국의 신예에게 응답했다.

칸=김은진 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