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몸, 한 가족입니다. 지금은 지혜롭게 힘을 모아 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성과급 문제를 둘러싸고 벼랑 끝 대치로 치닫던 삼성전자 노사 간 분위기를 바꾼 것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지난 17일 대국민 사과였다. 이 회장이 삼성전자 임금 협상 논란에 대해 고개를 숙이며 상생 메시지를 던지자 총파업을 예고하며 강경하게 맞서던 노조도 화답하며 대화 재개의 물꼬를 텄다. 여기에 총파업만은 막아야 한다는 정부와 청와대의 끈질긴 중재 노력이 더해져 노사는 총파업 예고일을 하루 앞둔 20일 가까스로 최종 합의안을 도출했다. ◇성과급 자사주로 지급
삼성전자 노사는 이날 오후 4시부터 경기 수원 경기고용노동청에서 다시 마라톤 협상에 들어갔다. 교섭에는 노조 측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과 사측 대표 교섭위원인 여명구 반도체(DS) 부문 피플팀장(부사장)이 참석했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협상을 주재하며 양측 간극을 좁히는 데 주력했다.
막판 최대 쟁점이던 성과급 배분 문제는 전체 성과급 재원의 40%는 반도체(DS) 전 부문에 똑같이 나눠주고, 나머지 60%는 각 사업부(메모리·시스템LSI·파운드리) 실적에 따라 지급하기로 했다. 유효기간은 10년이다. 사측은 실적 연동 비중을 과반인 60%를 확보해 경영의 기본 원칙인 성과주의 체계를 유지하는 명분을 세웠다.
반면 노조는 올해 일부 예외 조항을 적용하는 방안을 이끌어내 실리를 챙겼다. 시스템LSI, 파운드리 등 올해 적자가 예상되는 사업부 직원들도 메모리 사업부와 동일한 수준의 성과급을 보장받게 됐다. 시황 악화 속에서도 밤낮없이 연구·생산에 매진한 노동자들의 기여도를 전사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노조 측 주장이 올해 지급분에 전격 반영된 셈이다.
성과급 소모전을 끝내기 위한 제도화 방안도 구체화했다. 노사는 기존 성과급(OPI) 제도를 유지하되 사업성과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보장하면서, 여기에 사업성과의 10.5%를 재원으로 하는 특별성과급을 더 얹어주는 형태로 신설된다. 실적이 좋을 때 직원들이 가져갈 수 있는 보상의 파이를 확실하게 키우는 동시에 보상의 투명성을 높인 조치다. 성과급은 모두 자사주 형태로 지급된다. ◇AI 반도체 초격차 시동
이번 타결의 막후에는 청와대와 정부 관계부처의 유기적이고 긴박한 총력 대응이 있었다. 총파업 돌입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이 전면 중단되면 하루 1조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과 글로벌 공급망 마비, 신인도 하락 등 막대한 피해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두 차례에 걸쳐 공개 메시지를 통해 노사의 결단을 당부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5일부터 노사 양측과 개별 접촉을 갖고 설득 작업을 벌였다. 김 장관은 이날도 오후 4시부터 노사 간 협상을 직접 중재했다. 김 장관은 이날 협상을 마무리한 뒤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대원칙하에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지원했다”며 “어떻게 보면 삼성전자의 성장통인데 대화로 해결했다는데 ‘K-저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합의안은 삼성전자 조합원 투표를 거쳐 가결되면 단체협약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지닌다. 사상 초유의 총파업 위기를 극적으로 넘긴 삼성전자는 이제 전열을 재정비하고 고대역폭메모리(HBM) 주도권 탈환 등 반도체 시장에서 기술 초격차 전략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김채연/곽용희/수원=원종환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