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惡)의 평범성’에 대하여 [EDITOR's LETTER]

입력 2026-05-24 04:00


“그에게는 아무런 동기도 없었다. 오직 언어 능력의 결핍뿐 아니라 사유 능력의 결핍, 즉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의 결핍이 그를 악마로 만들었다.”
—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중에서

요 며칠 마음이 좀 무겁습니다.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이 희생한 일을 희화화했던 어떤 이들. 회사와 동료는 상관없고 내 성과급만 챙기면 된다고 목소리 높였던 어떤 이들. 조금 더 전엔 한밤중 뜬금없이 물리력을 동원해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려 했던 어떤 이들. 도대체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다들 똑똑하고 좋은 사람들일 텐데. 답을 찾다가 한 사람에게 닿았습니다. 예루살렘의 법정에 섰던 한 남자입니다.

1961년 예루살렘. 아돌프 아이히만이 피고석에 앉았습니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죽음의 수용소로 실어 나른 나치의 물류 책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학적인 악마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정신감정에서도 지극히 정상이었고, 평범한 이웃이었으며, 자신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한 모범 시민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을 개인적으로 미워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저 상부의 명령에 따라 수송 일정을 짰을 뿐이라고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이 자리엔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뉴요커지의 기자 이름으로 참석했습니다. 아렌트가 법정에서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아히이만이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끝내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최종 해결책’, ‘특별 처리’, ‘재정착’ 같은 나치의 행정 용어를 마치 회계장부의 항목처럼 입에 올렸고, 그 단어들 안에 든 비명과 죽음을 단 한 번도 자신의 의식 안으로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악이 거대한 악인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 아렌트는 이를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이윤 창출’을 최우선 하는 회사라는 시스템은 우리가 아이히만이 되기 너무도 좋은 곳입니다. 엑셀 시트의 숫자 하나를 바꾸는 행위가 현장 노동자의 안전망을 해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모니터 앞의 우리는 모르거나 알면서도 외면합니다. 그것은 그저 ‘비용 절감’이라는 KPI일 뿐입니다. 임원의 말 한마디에 수십억 예산이 비논리적으로 움직이고, 실무자들이 그 모순을 알면서도 “위의 뜻”이라는 핑계 뒤로 숨는 순간 악은 시작됩니다.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넘어서기 위해 제시한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사유와 판단’입니다. 그저 멈춰 서서 생각하는 것. 그리고 시스템의 명령이 합법적이고 효율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누군가의 존엄을 해친다면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스스로 판단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사무실이 멈춰 서기에 가장 적합하지 않은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메신저의 알림과 쏟아지는 이메일에 즉각 반응하다 보면 우리의 뇌는 반사 신경으로만 작동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의도적인 멈춤’입니다. 회의실을 나와 화장실로 향하는 짧은 복도, 출퇴근길 지하철 안, 점심 후 잠깐의 산책. 이런 작은 틈에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 필요합니다. 지금 내가 실행하려는 이 의사결정이 상식의 궤도 안에 있는가, 누군가의 삶을 부당하게 흔들고 있지는 않은가.

또 하나 필요한 것은 비즈니스 관용어를 해독하는 능력입니다. 아렌트가 간파한 아이히만의 가장 큰 결함은 ‘언어의 결핍’이었습니다. 그는 나치 행정용어와 상투적 관용구 뒤에 자신의 의식을 숨겼습니다. ‘최종 해결책’은 “유대인들을 가스실에서 죽이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의 사무실도 세련된 단어가 많습니다. ‘비용 절감을 위한 구조조정’ 같은 표현은 사실 “그냥 돈 드니 사람 자르자”는 말일 뿐입니다.

물론 혼자서 거대한 조직의 관성을 바꿀 수는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균열은 늘 한 사람의 작은 멈춤에서 시작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부분은 현장 실무자들의 안전에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라는 완곡하지만 뼈 있는 한 줄을 보고서에 남기는 것,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회의에서 “이게 정말 우리가 원하는 답이 맞을까요”라고 한 번 더 묻는 것, 익숙한 결재 라인 앞에서 잠깐 손을 멈추고 이 문서가 향할 끝자리에 누가 서 있을지 떠올리는 것. 사소해 보이는 이 작은 멈춤들이 조직 내부에서 발생하는 평범한 악의 행렬을, 결국에는 멈추게 하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독자님들도 혹시 일이 바빠 생각을 멈춘 적이 있으신지요. 잠깐만 멈춰서 생각하고 다시 일하시죠. 저도 그러겠습니다. 그리고 만약 제가 어느 순간 생각하기를 멈추고 있다면, 옆자리 동료가 제발 조용히 한마디 건네주었으면 합니다. “잠깐, 이거 정말 괜찮은 거예요?”하고 말이죠.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