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AI 시장에는 분명한 과열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비합리적 과열’인지 여부는 아직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로 불리는 하워드 막스 오크트리캐피털 회장이 AI 투자 열풍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5월 14일 한국경제신문이 주최한 ‘코리아인베스트먼트위크 2026’에서다.
막스 회장은 1995년부터 투자자들에게 보내온 ‘오크트리 메모(Oaktree Memo)’를 통해 시장 사이클과 투자 심리를 분석해 왔다.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이 “막스의 메모를 가장 먼저 읽는다”고 언급한 것으로 유명하다.
막스 회장은 2000년 닷컴버블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위험 신호를 비교적 정확히 짚어내며 명성을 얻었다. 그는 현재 AI 열풍과 2000년 닷컴버블의 가장 큰 차이로 시장 구조를 꼽았다. 막스 회장은 “닷컴버블 때는 상장한 기술 기업 상당수는 매출이나 이익조차 없었고 무엇을 만드는 회사인지 불분명한 곳도 많았지만 현재 AI 시장은 다르다”고 평가했다. 그는 “오늘날 순수 AI 기업 대부분은 비상장 상태로 훨씬 오래 머문다”며 “공모 시장보다는 벤처캐피털과 사모 자금 중심으로 투자금이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와 같은 개인투자자 중심의 투기 열풍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의미다.
다만 AI 시장의 불확실성은 과거 어떤 기술혁신보다 크다고 진단했다. 막스 회장은 “인터넷은 등장 당시에도 무엇인지, 어떤 효용을 주는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AI는 앞으로 세상을 얼마나 근본적으로 바꿀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5년 뒤 AI 기업들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고 얼마나 수익을 낼지, 시장 구조가 승자독식으로 갈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AI는 단순한 거품이 아니라 ‘변곡점 버블’
그는 AI를 단순한 거품이 아니라 ‘변곡점 버블(Inflection bubble)’로 규정했다. 철도와 라디오, 인터넷처럼 사회의 생산성과 산업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기술혁신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설명이다. 막스 회장은 “기술혁신 과정에서는 항상 과잉 투자와 자본 손실이 발생했다”며 “하지만 그 과정이 결국 사회 전체의 발전 속도를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특히 투자자들의 과열 심리가 기술 발전을 가속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사람들이 ‘지금 참여하지 않으면 영원히 기회를 놓칠 것’이라는 FOMO에 사로잡힐 때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다”며 “1880년대 철도 투자 붐 역시 결과적으로 미국 경제 발전을 앞당겼다”고 설명했다.
다만 투자 판단 측면에서는 극도의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막스 회장은 자신을 가치투자자라고 소개하며 “가치투자는 미래 현금흐름과 이익을 예측해 내재가치를 계산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AI 기업은 미래 수익성을 가늠하기 어려워 전통적 의미의 안전마진을 계산하기 어렵다”며 “현재 AI 투자는 가치투자가 아니라 개념과 가능성에 투자하는 영역”이라고 했다.
AI의 잠재력은 오히려 ‘과소평가’된 것일 수도 있어
그는 AI 산업의 잠재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오히려 “AI의 잠재력이 여전히 과소평가돼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 부족 논란을 언급하며 “몇 달 전만 해도 인프라 투자가 과도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지금은 공급 부족 우려가 나온다”며 “투자가 부족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어떤 기업이 최종 승자가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했다. 막스 회장은 “AI 기술이 기업들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여줄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효율성 향상이 반드시 높은 수익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하이퍼스케일러 기업들이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며 “승자독식 구조가 형성될 경우 일부 기업만 막대한 수익을 가져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막스 회장은 순수 AI 기업 투자를 ‘복권’에 비유했다. 그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사지만 대부분은 돈을 잃고 소수만 부자가 된다”며 “현재 AI 투자 역시 유사한 패턴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면 엄청난 대박 기회를 일부 놓칠 수는 있지만 반대로 패자를 선택해 원금을 잃을 위험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향후 시장 과열 여부를 판단할 핵심 변수로는 오픈AI와 앤트로픽 등 초대형 AI 기업들의 IPO를 지목했다. 그는 “올 하반기 오픈AI나 앤트로픽 같은 기업들의 상장이 예정돼 있다”며 “시장이 이들 기업을 어떤 방식으로 맞이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투자 심리를 판단할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훌륭한 개념을 가졌지만 가치를 정량화하기 어려운 기업의 주식을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관찰하면 현재 시장의 투자 기상도를 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AI 시대에도 인간 투자자의 역할은 남을 것으로 전망했다. 막스 회장은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고 패턴을 분석하는 데 탁월하지만 과거 사례가 없는 영역이나 정성적 판단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경영진과 직접 만나 느끼는 미묘한 위화감, 즉 ‘뒷목의 털이 쭈뼛 서는’ 본능적 경고는 기계가 쉽게 대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막스 회장은 “AI는 뛰어난 커버 밴드일 수 있지만 위대한 작곡가는 아니다”라며 “인간은 오랜 몰입과 경험을 통해 세상에 없던 통찰을 만들어내는 존재”라고 강조했다.
전예진 한국경제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