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의 전설적인 솔로 피아노 앨범 ‘쾰른 콘서트’(The Koln Concert)는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탄생했다.
1975년 1월 쾰른 오페라 극장에서는 키스 자렛의 야간 재즈 공연이 계획되어 있었다. 공연 몇 시간 전 피아노 상태를 점검한 자렛은 도저히 연주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오페라 극장 측이 상태가 엉망인 피아노를 준비했고, 그 피아노로는 도저히 공연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연 주최자의 간곡한 부탁 때문에 억지로 오페라 극장 무대에 오른 자렛은 높은 음역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를 시작했다. 높은 음역을 피해 건반의 중간 부분에만 머무르며 잔잔하게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즉흥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키스 자렛이 맘에 들지 않는 악기로 웅장한 오페라 극장에서 즉흥적으로 연주했던 그 곡이 바로 음반사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솔로 피아노 앨범 ‘쾰른 콘서트’(The Koln Concert)다.
지금껏 우리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혁신을 위해서는 ‘상자 밖에서’(Out of the Box)에서 생각하라고 배워왔다. 하지만 최근 영국에서 주목을 받는 책 <상자 안에서(Inside the Box)>는 전혀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스포츠 전문 저널리스트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의 저자인 데이비드 엡스타인(David Esptein)은 자신의 세 번째 책을 통해 “생각의 틀을 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틀 안에서 위대한 혁신이 태어난다”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다. 앞서 소개한 키스 자렛의 사례를 보더라도, ‘제대로 연주할 수 없는 피아노’라는 제약이 위대한 연주를 가능케 했다.
지금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에 살고 있다. 무엇을 할지, 어떤 사람이 될지,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수많은 선택지와 자유가 주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선택의 폭을 넓히고 틀에서 벗어나면 성공의 기회가 더 많아지리라 판단한다. 하지만 틀을 벗어나는 것만이 정답일까? 책 <상자 안에서>는 수많은 선택지가 오히려 우리를 혼란 속으로 빠트릴 수 있다며, 적절한 제약이나 한계가 도리어 ‘성공을 위한 디딤돌’ 또는 ‘혁신을 위한 핵심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낸다. 명확한 경계와 자유롭지 못한 제약 조건은 놀라운 집중력을 만들어내며, 우리 뇌가 새로운 해결책을 찾도록 강제한다.
닥터 수스(Dr. Seuss)는 ‘단 50개의 단어만 사용해야 한다’라는 편집자와의 내기에 응한 결과, 아동 문학의 걸작인 <그린 에그와 햄(Green Eggs and Ham)>을 탄생시켰다. 멘델레예프는 ‘마감 기한’이라는 강력한 제약 속에서 원소들을 체계화하며 주기율표를 완성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사는 ‘보잉 737’이라는 단일 기종만 운영한다는 강력한 제약을 통해 가장 빠른 회항 시간을 기록하며 저가 항공사의 전설이 됐다. 픽사는 제한된 예산을 창의성의 동력으로 삼아 세계 최초의 Full 3D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들어냈다.
책은 인간이 무한한 주의력과 자제력을 가진 존재가 아니므로, 인지적 한계를 인정한 상태에서 시스템을 설계해야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정된 자원이나 어쩔 수 없는 제약 조건을 어떻게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 알려준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 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