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 [EDITOR's LETTER]

입력 2026-05-17 06:47


요즘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주식 이야기죠? 그래서 조금 세계 증시로 눈을 돌려볼까 합니다. 요즘 세계 주식시장은 AI 랠리와 금리 안정화 기대에 힘입어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전 세계 주식시장의 흐름을 보여주는 MSCI ACWI 지수는 5월 12일 기준 지난 1년간 약 31% 상승했습니다. 미국은 평균만은 못해도 세계 증시의 60%를 넘는 덩치에 비해선 괜찮은 편입니다. S&P500은 테크 기업들 덕분에 약 26% 올랐습니다. 한국은 기록적입니다. 반도체와 AI 덕분에 KOSPI 기준 약 200%의 랠리를 펼쳤습니다. 일본도 강했습니다. 닛케이225 역시 약 65% 오르며 축제를 벌였습니다. 중국도 나쁘지 않습니다. MSCI 차이나 지수는 약 13% 상승에 그쳤지만 본토 A주를 반영하는 MSCI 차이나A 지수는 약 38% 오르며 정책 기대와 내수 회복, 기술주 반등이 맞물린 ‘선별적 부활’을 보여줬습니다.

그럼 세계경제의 다른 핵심축인 유럽연합(EU)은 어떨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2026년 현재 EU 증시는 ‘정중동’입니다. 밖에서 보기엔 조용합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우리가 알던 ‘유럽의 서열’이 뒤죽박죽되며 시끄럽습니다.

유럽 전체를 대변하는 STOXX 600 지수는 지난 1년간 약 10%대 초반 상승에 머물렀습니다. EU의 양대 축인 독일과 프랑스의 부진을 한때 무시받던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메꾸고 있습니다. 폴란드가 달려나가는 모습도 보입니다.

가장 먼저 ‘돈이 빠져나가는 국가’들을 보죠. ‘제조업의 성지’ 독일의 DAX 지수는 지난 1년간 약 2~3% 상승에 그치며 횡보했습니다. 러시아산 저가 에너지에 기반한 제조 모델이 흔들렸고, 자동차산업은 전동화 지연과 중국 경쟁이라는 이중 압박을 받고 있는 겁니다. 프랑스의 CAC40 역시 1년 상승률이 2% 안팎에 머물렀습니다. 잇따른 내각 붕괴와 만성적인 재정적자가 정치 리스크 프리미엄을 키웠고, 핵심인 럭셔리 산업이 수요 둔화로 흔들린 결과입니다.

반전은 ‘남유럽의 역습’입니다. 한때 유로존 위기의 진앙으로 평가받던 스페인의 IBEX35 지수는 지난 1년간 약 27% 올랐고, 이탈리아의 FTSE MIB 역시 약 22% 상승했습니다. 비결은 명확합니다. 재생에너지와 전력망 인프라, 은행주의 회복, 내수와 관광산업의 복원력이 결합한 결과입니다. 시장은 이들을 유로존의 새로운 투자 대안으로 재평가하고 있습니다.

폴란드도 흥미롭습니다. 폴란드의 WIG 지수는 지난 1년간 약 26% 상승했습니다. 사실 WIG는 2026년 초 한때 40%대 중반의 1년 상승률을 기록했다가 이후 조정을 거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유럽의 어느 주요 지수와 비교해도 상승세가 강합니다. 공급망 재편의 수혜자가 된 폴란드는 독일의 위기를 오히려 제조업 생산기지화, 물류 허브라는 기회로 바꾸며 전 세계 자본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강소국들의 움직임도 지켜볼 만합니다. 지중해의 작은 거인 몰타는 IMF 기준 2026년 실질 GDP 성장률 전망이 3.7%로 EU 내 최상위권에 올라 있고, 아일랜드 역시 약 2.5%로 EU 평균 1.3%를 웃돌고 있습니다. 주가지수는 몰타 MSE 약 4%, 아일랜드 ISEQ 약 12%로 시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실물경제 모멘텀은 여전히 유럽 평균보다 강합니다. 몰타는 물류, 아일랜드는 바이오에 강점이 있습니다. 당연 IT는 기본으로 강합니다. 주가가 먼저 달린 나라가 있는가 하면, 실물의 엔진이 먼저 뜨거워진 나라들도 있습니다. 다음 자본의 물결이 어디로 향할지를 가늠하게 하는 신호입니다.

생각해보면 유럽은 원래 조용한 땅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목격하는 이 치열한 자본의 이동에서 나오는 주가 격차는 유럽의 오랜 ‘투쟁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것 같습니다. 수천 년 동안 유럽은 끊임없는 전쟁과 정복, 견제와 균형이 반복되던 거대한 전장이었습니다.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서로의 생존을 위해 부딪히던 그 잔혹한 투쟁은 아이러니하게도 근대 과학과 민주주의, 그리고 산업혁명을 탄생시킨 인류 혁신의 용광로가 됐습니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순간 자본이 마르고 국가의 명운이 흔들렸던 그 처절한 생존 과정이 오늘의 유럽을 만들어낸 실질적인 힘입니다.

과거에 영토와 자원을 두고 벌이던 투쟁은 이제 주가지수라는 무대로 옮겨간 것 같습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부활, 폴란드의 진군, 독일과 프랑스의 고통스러운 참호전은 본질적으로 유럽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평화로운 연합체처럼 보이는 EU의 이면에는 지금도 기업가치와 시장점유율, 에너지 안보, 기술 패권을 두고 벌이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한창이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지금 유럽 주식시장이 보여주는 진실은 하나인 것 같습니다. 돈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다는 것. 유럽의 역사는 늘 이랬습니다. 자본은 끊임없이 한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한 제국에서 다른 제국으로 흘러 다녔고, 그 흐름의 끝자락을 붙잡은 자가 늘 다음 시대의 승자였습니다. 베네치아에서 암스테르담으로, 다시 런던으로, 그리고 지금 또 다른 곳으로. 자본은 언제나 그저 가야 할 곳으로 갈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흐름을 놓치지 말고 똑똑히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안에 우리가 가야 할 다음 시대의 해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홍표 한경비즈니스 편집장